
국내 무대를 평정했던 윤이나의 아메리칸 드림,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2024시즌, 윤이나의 이름 석 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해였다. 대상·상금왕·최저타수상까지 3개의 트로피를 휩쓰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2022년 6월 한국여자오픈 ‘오구(誤球) 플레이(자신의 것이 아닌 공을 치는 행위)’로 인한 징계를 딛고 돌아오자마자 3관왕에 오르며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재차 확인시켰다.
목표는 상향 조정됐다. 오랜 시간 꿈꾸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진출을 위해 고삐를 당긴 것. 지난해 12월 LPGA 투어 퀄리파잉 시리즈에 당차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최종 8위에 올라 투어 출전권을 손에 쥐었다. 순조롭게 진행된 도전기, 윤이나는 “매 대회 최선을 다한다면, 우승이든 신인왕이든 타이틀도 오지 않을까 싶다”며 “장기적으로는 세계 1위도, 오랫동안 해보고 싶다. 올림픽 금메달도 욕심나는 타이틀”이라는 청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국내 골프 팬들의 기대감 섞인 눈이 모두 그의 2025시즌을 향한 배경이다.

세계의 벽은 높았다. 데뷔전 2월 파운더스컵부터 컷 탈락 수모를 겪으며 첫 단추가 꼬였다. 이후로도 좀처럼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으면서 톱10은커녕 10위권조차 버거워 보였다. 절치부심 끝에 지난달 LA 챔피언십 공동 16위로 개인 최고 성적을 써냈지만, 반전의 계기는 되지 못했다.
이달 치른 3번의 대회, 블랙 데저트 챔피언십-미즈호 아메리카스 오픈-멕시코 리비에라 마야 오픈에서 모조리 컷 탈락했다. 특히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 직전 개최돼 톱 랭커들이 대거 불참한 이번 멕시코 오픈조차 본선에 닿지 못했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그만큼 경기력이 크게 떨어졌다. 이번 대회 페어웨이이 적중률 67.9%(19/28)에 머물렀고, 아이언샷 난조 속에 그린 적중률도 63.9%(23/36)로 초라했다. 매 라운드 31개의 퍼트를 시도할 정도로 쇼트 게임도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야심 차게 도전했던 신인왕 레이스에서 조명을 받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4번의 40위 진입으로 신인왕 포인트 108점을 모았다. 포인트를 얻은 18명 중 10위에 그치는 씁쓸한 성적표다.

그동안 경쟁자들은 매섭게 치고 나간다. 특히 올 시즌 굵직한 루키가 쏟아지는 일본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다케다 리오(472점)-이와이 치사토(304점)-야마시타 미유(300점)-이와이 아키에(213점)가 1위부터 4위를 모두 휩쓸었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7승에 빛나는 다케다는 지난해 11월 LPGA 투어 토토 재팬 클래식 우승으로 올해 정식 데뷔를 알렸다. 지난 3월 블루베이 LPGA에서 시즌 마수걸이 승리도 빠르게 신고했고, 이를 포함해 톱10도 벌써 5번이다. 쌍둥이 이와이 자매 중 동생 치사토는 직전 멕시코 오픈 우승으로 단숨에 2위로 치솟았다. 야마시타와 아키에는 각각 톱10 3번, 2번을 기록하며 상위권 경쟁을 이어간다.
판을 뒤집을 한방이 절실한 윤이나다. 고질적 약점으로 지목되는 쇼트 게임의 정확도를 살려야 강점인 장타력이 힘을 받을 수 있다. 잇따른 부진 속에서 자라나는 조급함을 이겨내야 한다는 멘탈적인 과제도 주어졌다. 오는 29일 열리는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 US여자오픈으로 반등 발판을 마련해야 할 때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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