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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햄스터 등 설치류(齧齒類)는 무한정 자라는 앞니 때문에 부단히 갉지 않으면 죽게 된다. 국가도 정부 인력과 재정에 대한 주기적 감축이 없으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트럼프 2기의 ‘정부효율부(DOGE)’ 신설 실험은 파격적이고 한국에 주는 시사점도 많다.
한국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제대로 된 정부 혁신을 추진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인력과 재정 지출 문제가 누적됐다. 특히 문재인 정부 5년간 공무원이 무려 15만명 늘어났다. 다른 나라보다 한국이 트럼프 2기의 정부효율부를 앞장서 벤치마킹해야 하는 이유다.
머스크에게 비효율 수술 맡겨
한국 공무원 비대, 재정지출 방만
미국처럼 파격적 개혁 시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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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부효율부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기업인의 약진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위원장을 맡고, 대다수 위원 자리에 실리콘밸리 빅테크 임원들이 영입됐다. 정부 부문에 기업의 시장 원리를 적용해 정부의 비효율을 걷어내겠다는 구상이다. 한국에서는 정부 대수술을 기업인에게 맡긴 사례가 없다. 이제라도 기업인들을 대거 활용해 정부 혁신에 나서야 한다. 기업인들의 개혁안을 묵살하지 말고 과감히 수용하는 열린 리더십이 필요하다.
정부효율부의 도전적 목표치도 본받을 만하다. 머스크 위원장은 428개 연방 기구를 99개로 줄이고, 200만명이나 되는 연방정부 공무원을 대폭 감축해 2조 달러(연방정부 예산의 약 30%) 비용을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IMF 위기 당시 정부 인력의 30% 감축 목표가 있었으나 일회성에 그쳤다. 사실 공무원 신분은 헌법으로 보장돼 있어 감축이 말처럼 쉽지 않다. 애써 감축해도 공기업 등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 정부’의 인력 증가로 나타날 수 있다. 그래도 도전적 목표는 중요하다. 목표의 절반만 달성해도 엄청난 성과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선제 감축도 배워야 할 대목이다. 2021년 기준 미국의 총고용에서 공무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15%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8.6%보다 낮지만, 미국은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구조조정도 빠르게 추진할 태세다. 정부 출범 초기임에도 교육부 해체 논의를 시작했고, 보건복지부 인력 감축도 착수했다.
한국의 공무원 비율은 8.9%로 아직은 낮다 보니 ‘작은 정부’라는 안이한 인식이 퍼져 있다. 하지만 한국의 통계는 공무원 신분자에 한정한 것으로 다른 나라의 기준과 차이가 있다. OECD 기준대로 군무원과 사립학교 교원 등 정부 재원이 들어가는 인력을 포함하면 한국의 공무원 비율은 17.8%로 치솟는다. 미국 못지않게 한국이 정부 효율화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이유다.
국가채무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2023년 기준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는 122.1%로 꽤 높은 편이다. 한국은 50.4%로 미국이나 OECD 평균(62.3%)보다 낮다. 하지만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기에 민감한 대응이 필요하다. 과거 신흥국들이 국가채무 비율 60%대에서 경제위기를 맞았던 전례에 비춰보면 한국도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급증한 정부 재정적자는 국가 채무를 늘리고, 이는 다시 국가신용도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한차례 국가부도 위기를 경험한 한국은 정부 효율화를 통해 국가채무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정부 효율화의 마지막 시험대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이다. 정부는 소비 진작을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실업률 개선을 위해 정부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 그래도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선을 유지해야 한다. 모든 국민에게 25만원씩 지역화폐를 지급하자는 제안도 이런 관점에서 따져봐야 한다.
2025년 29조6000억원의 세수 결손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역화폐로 지급하자는 13조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더구나 정부 인력 감축 없이 지출만 늘리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새로운 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기존 지출을 줄이는 방식이 필요하다.
정부 재정은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 아니다. 정부 곳간의 고갈을 막기 위해서는 비대해진 조직과 인력을 과감히 줄여야 한다. 트럼프의 정부효율부 실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대목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전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