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발굽 아래의 세계사
윌리엄 T 테일러 지음 | 김승완 옮김 | 사람in | 398쪽 | 2만4000원
문명사를 말의 눈으로 본다면 문명은 중앙아시아 스텝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야생의 말을 목축하고, 운송수단으로 길들이고, 말타기를 먼저 익혀 전투용으로 활용한 사람들이 거기 살았다. 이들은 유럽과 중국 등지로 말과 말 지식을 전파했다. 책은 그곳을 ‘스텝 제국’이라 부른다. <말발굽 아래의 세계사>는 말을 키워드로 기술한 인간의 문명사이다.
말은 한때 식량자원이자 강력한 전투 무기였다. 칭기즈칸에게 말이 없었다면 머나먼 유럽 땅까지 제패하겠다는 꿈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기마민족 흉노족을 막기 위해 쌓기 시작한 만리장성도 말의 전투력이 촉발한 인류 유산이다. 실크로드 등도 말이 없었다면 황량한 자연상태로 남았을지 모른다.
17세기에 유럽인이 아프리카 대륙을 침략할 때도 말을 거느리고 갔다. 그런데 서구 열강의 말은 체체파리 같은 열대 벌레에 취약했다. 병에 걸려 쓰러졌다. 운송과 전쟁 도구를 잃은 유럽인은 아프리카 야생 얼룩말을 길들이려 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말은 하루 동안 제 몸무게의 2.5%의 풀을 먹는다. 섬유질의 풀은 먹는 족족 배설되는 만큼 에너지 유지를 위해 계속 풀을 뜯어야 한다. 말이 빠른 이동성을 지닌 이유 중 하나다. 말이 되새김질하는 쪽으로 진화했다면 칭기즈칸도 전광석화처럼 유럽으로 질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책은 말처럼 빠르게 달린다. 고생대부터 근현대까지 거침없다. 또 중앙아시아에서 서쪽을 향해 아프리카로, 유럽을 가로질러아이슬란드까지 가고, 다시 말머리를 돌려 중국·한반도는 물론 아메리카 대륙까지 간다.
속도감이 상당하다. 그런데 그 속도감은 읽기의 속도감이 아니라 쓰기의 속도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