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개국 지도자들, 병풍처럼 세웠다…‘트럼프쇼’ 같았던 가자 평화 정상회의

2025-10-14

“평화의 첫걸음은 항상 가장 어렵지만 오늘 우리는 그걸 해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이집트 휴양지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가자 지구 평화를 위한 정상회의’에서 “마침내 중동에 평화가 찾아왔다.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냈다”며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가자 평화 정상회의에서 ‘가자 평화 선언’에 서명한 뒤 “신의 도움으로 이뤄낸 역사적인 돌파구”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부각시켰다.

회의장 풍경도 ‘트럼프 독무대’에 가까웠다. 이날 정상회의는 트럼프 대통령과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공동 주재했지만 트럼프가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했다. 평화 선언에 서명하기 전 약 20분 동안 각국 정상들을 손님 맞이하듯 일일이 악수하며 사진 촬영을 했다. 평화 선언 서명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가자지구 휴전 중재에 적극 관여한 이집트·카타르·튀르키예 정상이 참여했다.

트럼프, 각국 정상 출석 부르듯 호명

이날 정상회의에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헝가리·요르단·바레인·파키스탄·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등 30여 개국 지도자들이 참석했지만, ‘트럼프 쇼’를 빛내기 위한 조연들처럼 보였다. 이들의 열렬한 박수 속에 연단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은 30여분 연설하는 동안 마치 출석 체크를 하듯 각국 정상을 하나하나 부르며 평화 선언 서명식에 배석한 데 대해 사의를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30여분 연설하는 동안 약 20명의 각국 지도자들이 트럼프 등 뒤에서 병풍처럼 늘어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돌아보며 “왜 서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약속하건대 연설을 짧게 하겠다”고 말해 폭소가 터졌다. 이어 “우리가 이룬 것은 매우 독특하고 특별한 일”이라며 “아마도 역사상 한자리에 모인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들의 모임일 텐데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세계 역사 기록될 기념비적인 날”

트럼프 대통령은 “수년간의 고통과 유혈사태 끝에 가자 전쟁이 끝났다”며 “오늘은 중동 너머 세계 역사에 기록될 기념비적인 날”이라고 했다. 또 “3차 세계대전이 중동에서 시작될 거라는 글을 여러 번 봤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를 놀라운 역사적 돌파구로 이끌어낸 협력과 선의의 정신을 이어가 보자. 우리가 함께한다면, 우리는 중동의 놀라운 운명, 즉 문화와 상업, 신앙과 인류애가 만나는 안전하고 번영하며 아름다운 교차로 이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 도중 세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를 부르며 “저번에 저에게 하셨던 말씀을 다시 해 보라. 정말 좋았다”고 하자 샤리프 총리는 “진정한 평화의 사도인 트럼프 대통령 주도 하에 평화가 이뤄졌다. 오늘 이 위대한 대통령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다시 한번 추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앞서 방문한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에서도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의원들은 “트럼프”를 연호하며 환호했고, 연설 내내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대통령, 특히 트럼프 대통령처럼 미국 내에서 극심한 분열을 일으킨 대통령이 해외에서 이처럼 환대받는 경우는 드물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찬사를 즐겼다”고 전했다.

가자 평화선언 ‘트럼프 노력 지지’ 담아

백악관은 미국·이집트·카타르·튀르키예 4개국 정상이 서명한 평화 선언문을 이날 공개했다.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을 위한 트럼프 선언’이라는 이름의 이 선언문에는 “가자 전쟁 종식과 중동의 지속적 평화를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진심 어린 노력을 지지하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 지역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안보·안정·기회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 협정을 이행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선언이 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전쟁의 종식 약속을 담았지만 가자지구의 평화 정착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단 평화 선언 자체가 가자 평화 구상의 실현을 위한 4개 중재국의 공동 노력을 약속하는 선언적 합의에 불과할 뿐 전쟁의 근본 원인이자 중동 평화의 핵심인 팔레스타인 문제 해법이나 가자지구 행정 관리 등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다.

“팔레스타인 미래 등 난제는 외면”

AP통신은 “트럼프의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다”며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무장 해제를 계속 고집하지만 하마스가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점을 핵심 난제로 꼽았다. 가자지구의 향후 통치 구조도 불투명하다. 트럼프 대통령 구상은 국제기구가 가자지구를 통치하면서 팔레스타인 기술 관료의 일상적 행정업무를 감독한다는 것이지만, 하마스는 가자지구 통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협의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장애물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며 “가자 재건에 필요한 조건이나 팔레스타인 민족의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과 그 대안 사이의 상충관계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방문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하는 대통령 전용기 내에서 가진 취재진과의 대화에서 향후 가자지구 통치 방안에 대한 질문에 “많은 이들이 ‘하나의 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영토를 묶어 하나의 국가 안에서 공존하는 방안)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자 독립된 국가로 존재하는 방안)을 선호한다”며 “지켜봐야 할 것이다. 나는 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고만 했다. 자신의 임기 후에도 중동 평화가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누가 되든 간에 그들을 위해 밖에서 싸우겠다”고 했다.

이날 가자 평화 정상회의에 전쟁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불참한 점도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이스라엘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정상회의에 초청받고도 참석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유대교 명절 일정’을 이유로 들었지만, 현지 언론은 “우파 연립정부 내 강경파의 반발을 의식한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정상회의 참가국인 튀르키예와 이라크 쪽에서 네타냐후의 참석을 반대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마스는 “무장 해제를 전제로 한 회담은 수용할 수 없다”며 일찌감치 불참 의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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