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정책 ‘일단 스톱’… “네 편 내 편 정치가 행정 망친다” [정부부처 1급 인사 ‘하세월’]

2025-10-26

‘행정과 정치’ 가교 역할하는 준정무직

인사 지연에 실무작업 제대로 진행 안 돼

국·과장 인사도 줄줄이 밀리면서 ‘불만’

외교부 재외공관장 24%가 부재 상태

국방부 고위직·대테러센터장 등 공석

문체부 산하 기관장 공백 문제도 심각

“내일 어떻게 될지 몰라… 일 손에 안잡혀”

대통령실 “장관들에게 빠른 인사 지시”

주요 정부부처 1급은 ‘행정과 정치’의 경계이자 둘의 가교 역할을 하는 ‘준정무직’이다. 1급은 차관급 바로 아래로 일선 현장에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실무진을 컨트롤하는 동시에 정치권과 직접 소통하며 주요 대책을 조율한다. 1급 인사가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4개월 넘도록 지연되면서 국정과제 추진 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1급 인사 지체로 국·과장급 인사도 줄줄이 밀리면서 일선 현장에서는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뭘 하냐”는 불만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6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1급 인사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일선 부처에선 주요 정책이 ‘일단 스톱’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속세 개편 작업의 경우,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배우자 공제 5억원, 일괄 공제는 5억원으로 10억원이 넘어가면 세금을 내야 한다. 어느 날 집주인이 사망하고 가족은 배우자와 자식이 남았는데, 집이 10억원 넘으면 집 팔고 떠나야 한다. 너무 잔인하다”고 밝혀 의원 입법 등의 형태로 속도가 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기재부 1급 인사가 기약 없이 미뤄지면서 법안을 뒷받침할 실무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불만이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여러 의원 안이 나와 있는 상태여서 국회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명했다. 기재부 1급 인사가 이달 말까지도 단행되지 않을 경우 내달부터 국회에서 본격 진행될 예정인 내년도 예산안 및 세제개편안 심의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외교부는 차관급인 외교전략정보본부장과 차관보의 공석 상황이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기획조정실장 자리도 비어 있다. 전임자인 배종인 실장이 차지훈 주유엔대사 보좌를 위해 갑자기 주유엔 차석대사로 옮긴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재외공관장 부재 상황이 심각하다. 현재 대사 공석이 25곳, 총영사 공석은 17곳 등 총 173개 재외공관 중 42곳(24.3%)이 공관장 부재 상태다. 외교가에서는 인사 지체 배경에 대해 “정부 출범 후 정치적으로 배치되는 특임공관장 인사가 이뤄진 다음 직업 외교관 인사가 진행된다는 점이 영향을 준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장의 연속성이 중요한 외교 업무 특성상 해외 공관장의 장기 공백에 따른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국방부는 안규백 장관이 지난 7월 취임한 후 이례적으로 합동참모의장 등 4성 장군 전원을 교체한 이후 후속 고위직 인사가 나지 않고 있다. 국방정책실장을 비롯해 국군방첩사령관, 정보사령관 등이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합동참모본부도 특검 수사로 이승오 합참 작전본부장이 직무정지되는 등 인사 공백이 크다. 중장급을 포함한 고위직 인사가 늦어지면서 군 안팎에선 하마평과 인사 규모를 놓고 온갖 설이 오가고, 이에 따라 현장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 소식통은 “방위산업에 집중 투자한다고 했는데, 후속 정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며 “총리와 각 부처 장관을 임명했으면 그 사람들에게 나름대로의 인사권을 줘야 한다. 안 그러면 누가 일하라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가 다가오는데 대테러센터장도 20일가량 공석 상태다. 전임 대테러센터장이 지난달 말 사의를 표하고 이달 초 의원면직된 후 후임 인사가 없었다. 국무조정실 산하 대테러센터는 국가 대테러활동 관련 임무 분담 및 협조사항 실무조정뿐 아니라 관계기관 테러 대비태세 점검과 테러경보 발령·조정 등을 담당한다. 에이펙을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주요국 정상들과 글로벌 경제인이 방한하는 만큼 국가 대테러 업무를 총괄하는 인사가 비어 있는 상황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행정안전부도 1급 직위 8개 중 차관보는 4개월째 공석이며, 실장급 6명 중 일부는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1급 직위인 부단체장, 즉 16개 시·도 행정부단체장(차관급인 서울시 제외)도 행안부 소관인데, 내부적으로는 ‘현 정부에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총 7명의 1급 중 5명이 사표를 낸 보건복지부도 후임 인사가 지체되고 있다.

1급 인사가 지체되면서 국장, 과장도 인사도 줄줄이 밀리고 있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한 관계자는 “매 정부마다 1급부터 바뀌는데, 국장들도 그에 맞춰서 이동한다”면서 “그게 안 되니까 어느 정도 믿고 추진해야 할지 다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차관이 늦게 임명된 문화체육부의 경우 이전 정부부터 이어진 산하 기관장 인사 지체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관광공사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대표적이다. 한류 열풍과 중국민 무비자 입국 등으로 관광산업 진흥의 호기를 맞았지만 이를 선도해야 할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1년10개월째 공석이다. 2023년 1월 김장실 전 사장 퇴임 이후 주요 인사 내정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간 6000억원대 예산을 콘텐츠산업에 투자하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역시 수장 장기 공백에 따른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K콘텐츠 발굴 및 글로벌 확산을 위한 장르별·기능별 지원 강화를 위한 기관인데 지난해 9월부터 공백 상태다. 다른 주요 문화 관련 기관장들도 장기 공백인 경우가 적지 않다. 예술의전당 사장과 국립국악원장 그리고 세종학당재단 이사장 등이 현재 수개월에서 1년 이상 공석 상태다.

1급 인사는 보통 대통령실에서 최종 승인을 받는데, 이례적으로 지체되는 배경을 두고 일선 부처에서 각종 ‘뒷말’이 나온다. 한 고위공직자는 “인사평도 안 듣고 (대통령실이) 그냥 네 편과 내 편으로 나눠서 (인사를) 하려는 것 같다”면서 “이러면 행정시스템상 후배들이 열심히 일하기 힘들다. 정치가 행정을 망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1급 인사는 사실상 장관이 하는 것인데, 신임 장관이 업무 파악을 하는 시간이 필요해 임명이 늦어지고 것으로 안다”면서 “대통령이 국무회의 등에서 몇 차례 1급 인사를 빨리하라고 지시했고, 21일 국무회의에서도 장관들에게 1급 인사를 빨리하라고 거듭 지시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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