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신용카드 ‘先구매 後결제’, 10년새 170배 폭풍성장”
이코노미스트, “BNPL서비스, B2B 금융혁신·투자시장까지 젊은 층 중심으로 확산중”
“점심값도 당당히 4회 할부로 나눠 내는 시대가 왔다”.
클라르나·어펌 등이 시작한 ‘선구매 후결제(BNPL·Buy Now, Pay Later)’의 할부 서비스가 10년새 170배로 커지면서 새로운 글로벌 금융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페이팔과 제이피모건체이스은행까지 뛰어들어, 온라인 쇼핑은 물론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이제는 BNPL이 널리 쓰이고 있다. 젊은 세대 중심으로 ‘소액·단기 무이자 할부’가 일상화되면서, 기존 신용카드 등 전통 금융시장까지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분석했다.
BNPL 시장은 10년 전 20억 달러(약 2조 7792억 원)에 불과했다. 이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크게 성장해, 지난 2024년에는 3420억 달러(약 475조 2432억 원)로 무려 1만7000%나 몸집이 불었다. 이 서비스는 특히 할부 관행이 덜 확산된 기업간 거래(B2B) 시장에서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 일부에게 (멕시코식 패스트푸드인) 부리토의 온라인 주문, (북미지역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 위상의) 코첼라 음악 페스티벌 티켓, 보톡스 주사가 생필품까지는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이제 ‘BNPL’ 방식으로 결제할 수 있다.
이런 구매 방식은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점심값을 할부로 내는 것은, 일부 사람들 눈에 소비주의의 극치로 보인다. 또 다른 이들은 BNPL에 대해, 전통 금융의 경계 밖에서 불안정한 차입자를 노리는 위험한 대출 형태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비아냥이나 불안은 이 산업의 성장세를 막지 못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결제업체인 월드페이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BNPL 결제 규모는 3420억 달러에 달했다. 10년 전 20억 달러에서 폭증한 것. 제이피모건체이스, 페이팔 같은 전통 금융사들이 이 시장에 진입했다. 기존 은행이 담당하던 업무를 BNPL 기업이 흡수하고 있다.
B2B 대출 시장의 기회는 소비자 부문보다 더 클 수 있다. 최근에는 BNPL 대출채권을 묶고 이를 자산유동화(증권화)시켜 운용사들이 사들이는 시장도 급성장 중이다.
BNPL의 개념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1856년 아이작 싱어와 에드워드 클라크가 재봉틀을 할부로 팔아 성공을 거둔 것이 시초. 오늘날에도 원리는 비슷하다.
고객이 100달러(약 13만 8970 원)짜리 제품을 구매하면 BNPL 대출사는 판매자에게 즉시 대금을 지급하고, 예를 들어 3달러(약 4169.10 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판매자는 매출이 늘어 만족한다. 대출 이용 고객은, 대출이 없는 고객보다 평균 20% 이상 더 소비한다. 고객은 보통 6주 동안 4회에 나눠 무이자로 이를 상환한다.
BNPL 산업은 아직 성장 초입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 고객 중 1965년 이전 출생자는 2% 미만만이 BNPL 결제를 사용한다. 그러나, 엠지 세대의 고객은 10%가 이용한다.
젊은 세대의 소비 비중이 커질수록 시장은 확대된다. BNPL 보급이 오래된 스웨덴에서는 온라인 구매의 20% 이상이 BNPL로 결제된다. 미국의 결제율은 16분의 1 이하다. 콜롬비아(Addi), 싱가포르(Atome), 사우디아라비아(Tamara) 등에서도 지역 기반 BNPL 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BNPL과 전통 금융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BNPL업체인 클라르나는 2017년부터 유럽에서 은행 면허를 보유했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세바스티안 시에미아트코프스키는 인공지능(AI) 기반의 디지털 금융 비서를 목표로 한다.
역시 BNPL업체인 어펌은 2년 전 직불카드를 출시, 현재 가입자가 200만 명에 육박한다. 이 카드는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일시불 또는 할부 결제가 가능하다. BNPL을 오프라인으로 확장시킨 것. 애플·구글 지갑에도 BNPL을 통합시켰다.
반대로 기존 금융사도 BNPL을 도입했다. 페이팔은 2020년 시작 후 지난해 BNPL 결제 330억 달러(약 45조 8601억 원)를 처리했다. 연 20% 성장하고 있다. 일부 은행은 결제 후, 금액을 분할 상환하도록 했다. 클라르나는 아디옌, 제이피모건 페이먼츠, 스트라이프와 제휴해 수백만 판매처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B2B 신용시장도 변화 중이다. 미국 기업들의 외상매입금(미지급금)은 4조9000억 달러(약 6810조 51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신용카드 잔액인 1조2000억 달러(약 1667조 8800억 원)의 4배다. 전통 방식은 신용평가·채권추심 모두 비효율적이어서, 혁신 기회는 크다.
독일업체 빌리 공동창업자 마티아스 크네히트는 “B2B 대출은 소비자 시장보다 15년 뒤처졌다”고 말한다. 영국 호코도의 리처드 손턴은 “BNPL을 제공하면 중소기업의 구매액이 평균 40% 늘어난다”라고 설명한다.
빠른 확장을 위해 BNPL사는 가벼운 대차대조표를 선호한다. ‘부리토 담보 채권’이라는 농담이 있지만, BNPL 채권 시장은 활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요가 공급을 못 따라가는 먹이사슬”이라고 표현한다.
엘리엇 어드바이저스는 지난해, 클라르나의 390억 달러(약 54조 2061억 원) 규모 영국 대출 포트폴리오를 매입했다. 케이케이알은 페이팔 BNPL 채권 최대 440억 달러(약 61조 1556억 원)를 사들이기로 했다. 어펌은 120억 달러(약 16조 6776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했다.
다만 우려도 남는다. 이 산업은 지난 10년간 장기 불황이 없었던 시기에 성장했다. 이 때문에 경기침체 시 타격이 불가피할 수 있다.
BNPL 이용자는, 신용카드 사용자보다 소득이 낮다. 연체율 증가 조짐도 있다. 클라르나의 소비자 신용 손실은 올해 1분기 전년 대비 17% 증가했다. 연체 경험 비율은 2021년 15%에서 2024년 24%로 상승했습니다.
그럼에도 BNPL의 부도율은 여전히 낮다. 미국 금융 규제 기관인 소비자금융보호국(CFPB· 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에 따르면, 2019~2022년 BNPL 부도율은 2%로, 신용카드(10%)보다 현저히 낮았다. 일부는 ‘중복 대출’(loan stacking)로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러한 행동은, 소비자가 이전 대출을 상환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대출을 받는 하향 나선형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CFPB 조사에서는 BNPL 사용 후 신용카드 부채나 연체 수수료가 늘지 않았다. 또한, BNPL 사용자는 할부로 결제에 동의한 후, 18개월 동안 다른 출처에서 대출을 받는 가능성이 더 높지 않았다.
미국 신용평가사 파이코(FICO·Fair Isaac Corporation)는 올해 6월부터 대출자의 BNPL 기록을 반영한 신용점수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업체인 어펌과의 1년 연구 결과, BNPL 기록이 포함되면 잦은 이용자의 신용점수가 오르거나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북유럽 스칸디나비아의 연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긍정적 결과가 나왔다.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의 크리스틴 라우덴바흐와 공동 연구진은,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북유럽 은행의 100만 건 대출 신청서를 분석했다. BNPL 사용 이력과 강력한 상환 이력을 갖춘 고객들은, 기존 신용 등급이 제시하는 수준보다 평균 1.4%포인트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BNPL의 최종 평가는 경기침체 때 내려질 것이다. 하지만 젊고 대출 경험이 적은 이용자가 많음에도, 이 새로운 금융형태가 점점 주류화되면서 현재로선 비판보다 긍정적 신호가 우세하다.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고 유용해 보인다. 그러니 부리토를 BNPL로 사더라도 눈치 보지 말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데이터저널리즘의 중심 데이터뉴스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