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핀테크 산업 혁신을 목표로 도입한 금융 규제 샌드박스(금융혁신서비스) 제도가 대형사 위주로 고착화되고 있다. 자본과 인력이 부족하면 샌드박스 통과 자체가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지며, 대형 금융사와 빅테크 기업 중심으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13일 본지가 금융규제 샌드박스 지정 현황을 분석한 결과, 중소 핀테크 비중은 제도 도입 이후 꾸준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지정된 샌드박스에서 중소 핀테크 서비스 비중은 5%에 불과하다.
제도가 시작한 2019년에는 전체 90건 중 56건(62%)이 중소 핀테크 서비스였으나 2020년에는 67건 중 22건(33%), 2021년에는 53건 중 8건(15%), 2022년은 52건 중 7건(14%)으로 줄었다.
중소 핀테크 비중은 2023년부터 10%도 넘지 못했다. 2023년은 222건 중 16건(7%), 2024년은 171건 중 9건(5%)에 그쳤다. 올해 상반기는 63건 가운데 5건(8%)에 머물렀다.
샌드박스 심사 기준이 높아진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혁신금융으로 지정을 받기 위해 혁신성은 물론 소비자 보호, 리스크 관리, 자금 확보 능력까지 다방면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한 로펌 관계자는 “중소 핀테크 기업이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어도 금융당국은 리스크 관리, 자금 확보 등을 보수적으로 심사한다”며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 등 도움 없으면 심사 통과가 어려우며 이에 따른 비용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반면, 대형 금융사와 빅테크 기업은 자본력과 조직 내 전문성을 기반으로 규제 샌드박스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핀테크 시장이 빅테크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 운영 중립성이 부족한 것도 중소기업 진입에 장벽이라는 문제제기가 나온다. 한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혁신금융심사위원회 구성 주도권을 금융위 등이 가지다보니, 혁신성보다는 규제 친화적인 시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해 본래 제도 취지를 벗어났다”고 비판했다.
핀테크 업계는 이 같은 쏠림현상이 생태계 축소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중소 핀테크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 명목으로 중소 핀테크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높은 기준이 혁신을 막고 있다”면서 “평가 기준을 재편하거나, 빅테크 기업과 같은 조건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두호 기자 walnut_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