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임팩트’ 기획한
유승원 브라이언임팩트 PI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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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경력 20년의 IT 개발자는 공모전 수상작들을 뒤졌다. 해커톤에서 대상을 받은 아이디어, 애플리케이션으로 구현된 서비스들도 많았다. 불과 지난해 수상작들인데도 막상 접속해 보려고 하면 줄줄이 닫혀있었다.
“이런 서비스가 조금 더 길게 갈 수는 없을까.” 유승원 브라이언임팩트 플랫폼이니셔티브(PI)팀장은 이들을 지원하는 사업 ‘사이드임팩트’를 기획했다. 사이드임팩트는 기술을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지난해 12월 선정된 30개 팀에 총 2억2000만원을 지원했다.
유승원 팀장은 “IT서비스는 실사용자의 피드백을 받고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더 나은 서비스로 발전하는데, 그 기간을 버티는 게 어렵다”며 “이 시기를 잘 보낼 수 있도록 지원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카카오에서 개발자로 일하던 그는 2021년 소속을 옮겨 브라이언임팩트 설립 멤버로 참여했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브라이언임팩트 사무실에서 만난 유승원 팀장은 “개인 시간을 써가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사람들을 조금만 뒷받침해 준다면 전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를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좋은 서비스는 없다
기술 기반 프로젝트는 모두 지원할 수 있나요.
“기술 기반이라는 게 폭이 넓어요. 흔히 온라인 서비스만 떠올리지만, 하드웨어 기반의 제품도 있고, 연구 프로젝트도 있죠. 최소 요건을 충족하는 프로젝트는 모두 지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유의미한 사회문제를 다루는지, 기술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지 등의 판단은 재단이 하지 않고 참가자 커뮤니티에서 리뷰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했어요. 선정팀도 별도의 심사위원이 있지 않고 커뮤니티에서 투표를 통해 진행됩니다.”
전혀 뜻밖의 팀이 선정될 수도 있겠네요. 커뮤니티의 힘을 믿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죠. 커뮤니티에서 정해진 규칙에 의해 리뷰와 투표가 이뤄지니까요. 어떤 면에서는 중앙 관리자 없이 프로세스 내 자율적인 합의에 따라 운영되는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와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재단에서 초청한 전문가나 재단 구성원들도 커뮤니티에 포함돼 있지만 모두 동등하거든요. 처음에는 과연 동작할까, 부작용이 없을까 걱정했지만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의 모임이어서 가능한 것 같아요. 다수의 당사자의 집단 지성이 소수의 전문가보다 더 좋은 선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사업 초기여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커뮤니티 안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참가자 커뮤니티 규모는.
“500명 정도 됩니다.”
지원 자격이 따로 있나요.
“처음에는 어떤 기준을 둬야 할지 고민했어요. 예를 들면 사용자 1만 명 이하, 혹은 법인 설립 1년 미만 같은 식으로요. 하지만 이렇게 기준을 세워버리면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투자를 받지 않은 단계의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거로 정했습니다. 다른 자격은 모두 없앴어요. 심지어 두 번, 세 번도 지원받을 수 있게 열어뒀어요. 그랬더니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비영리단체, 일반 스타트업까지 다양하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성공을 경험하라
MVP(최소기능제품)가 있는 팀만 지원이 가능해서 허들이 높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지원자가 없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팀이 지원했어요. 그런데도 MVP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매우 중요합니다. 일반적인 공모전은 아이디어만 내거나 MVP를 만드는 것까지 합니다. 이미 구현된 서비스를 발전시키기 위한 지원 사업은 거의 없어요. 사이드임팩트가 이 단계를 만들어 준 셈이죠.”
개발자들이 많이 참여하겠네요.
“물론 개발 베이스 지원자가 많아요. 개발자들은 경력 개발을 위해서든 자기만족을 위해서든 본업 외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시간과 돈을 써가면서 그런 일을 할 때 뭔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죠. 재단에서 지원하면 더 많은 사람이 이러한 시도할 테고 이런 사람들의 풀(pool)을 확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비영리에서 지원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비영리 분야에서는 IT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젊은 직원들도 많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움직임도 큽니다. 사이드임팩트의 본질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겁니다.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발전시키면서 얻은 성공의 경험은 또 다른 서비스가 출시되는 밑거름이 되죠.”
개발자와 비영리의 교류나 접점이 늘어나면 좋겠네요.
“영리와 비영리 구별 없이 인재들이 순환될 수 없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특히 개발자들은 비영리로 넘어가면 커리어가 단절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다른 직군들도 비슷한 정서가 있는데, 이러한 인식을 바꾸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비영리 영역에서 기술 프로젝트가 많아지고, 새로운 기술을 많이 시도해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외국의 민간재단들은 그런 경우가 많아요. 사이드임팩트가 그런 부분에서의 작은 시도라고 생각해요.”
사이드임팩트 기획자로서 바라는 게 있다면요.
“사이드임팩트 출신 팀들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거라고 믿습니다.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현직 개발자, 스타트업과 비영리 종사자까지 최대한 많은 사람이 사이드임팩트에 참여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그들의 프로젝트가 발전하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재단의 지원을 받은 팀들이 외부 투자를 받아 이른바 ‘졸업’을 하게 되는 날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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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임팩트’가 우리에게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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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 평일 주간에는 통화가 어렵습니다.”
지난주 기자로부터 취재 요청을 받았다. 회사 업무가 밀려 바로 대응하지 못하고 일과 이후로 미뤘다. 약속 시각을 다시 조정한 끝에 토요일 오후 3시에 첫 통화가 이뤄졌다. 휴일로 미루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한 ‘백곰’ 프로젝트에 대해 물어왔다. 백곰은 대학생이던 지난해 전국 각지에 흩어진 6명의 학부생이 팀을 이뤄 해커톤에 도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대학생을 포함한 20대들이 백신과 같은 의료 정보에 둔감하다는 점에 착안해 20대를 위한 백신 추천 서비스를 만들었고 최우수상을 받았다. 팀명이자 서비스 이름인 백곰은 ‘백신아, 곰아워’를 줄인 것이다.
우리는 해커톤 이후 같은 해 8월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실제 배포 단계까지 진행하는 해커톤에 도전했다. 보통 공모전이나 대회에 출품한 서비스는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흐지부지되거나 고도화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다. 해커톤에서는 2~3일 동안 집중해서 MVP를 만들고 발표하는 게 목표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서비스로 발전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팀은 많지 않다. 매년 수십 개의 해커톤이 열리고 아이디어가 쏟아지지만, 실제 서비스로 이어지는 건 극소수다. 대부분은 개발비 부족, 유지보수 인력 충원 등의 한계로 사라진다.
백곰은 실사용자 대상으로 피드백을 받으면서 방향을 바꿨다. “이 기능, 영유아 부모들에게 더 필요할 것 같다”는 팀원들의 의견이 모이면서 기존 백신 접종 추천 기능에 영유아 건강검진 정보, 응급실 조회 서비스 등을 추가했다. 그렇게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백신 정보를 추천하고 육아에 필요한 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이 과정에서 팀원도 6명에서 7명으로 늘었다. 이 중 취업자인 5명은 본업과 병행하며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대학생들의 열정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지만 취업에 성공했다고 해서 등한시하지 않았다. 특히 의료 영역은 공공의 성격이 강해서 정보불평등 해소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서비스에 대한 팀원들의 열망이 크다. 퇴근 이후 혹은 주말 시간을 쪼개 개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개발 기간이 아닐 때는 온라인에서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한다.
백곰이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었던 건 브라이언임팩트 재단의 지원 사업 ‘사이드임팩트’ 덕분이다. 사이드임팩트는 백곰처럼 공익 목적의 개별 프로젝트를 발굴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기술 기반 프로젝트가 세상을 바꾼다는 재단의 믿음과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만나 현재 30여 프로젝트가 개발 중이다. 이들 서비스가 고도화되면 세상은 달라질 수 있을까.
과거 세탁기와 식기세척기의 발명으로 가사노동 시간이 대폭 줄었고, 엘리베이터와 자동변속기의 등장은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허물었다. 이러한 혁신 기술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의 보편적 행복을 고민하던 사람들의 열정이다. 누군가의 편의를 위한 기술은 모두가 편해지는 지름길이다.
사이드임팩트에 선정된 팀들을 지켜보면서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함께 가는 것은 멀리 갈 뿐 아니라 더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