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세기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 19세기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1830~1886), 그리고 2015년에 만들어진 ‘카프리초스’와 ‘야상곡’ 연작.
서울 용산구의 갤러리 리만머핀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 작가 래리 피트먼(73)의 개인전 ‘카프리초스와 야상곡’은 쉽게 연상되지 않는 조합들을 한 데 엮었다. 카프리초스 연작은 고야의 18세기 말 동판화 연작인 ‘로스 카프리초스’에서 제목을 따왔으며, 신체, 고통, 죽음을 다룬 디킨슨의 시구를 적어뒀다. 야상곡 연작은 조용한 밤의 분위기를 음악 대신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듯 검은 제소(석고 가루)를 채운 캔버스에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사람과 물체를 그려냈다.
전시된 피트먼의 작품 10점은 모두 2015년 작품이다. 10년 전의 작품을 지금 선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시 개막일인 지난 6일 기자들과 만난 피트먼은 “그림에서 표현하고자 한 파시즘과 우경화가 지금까지도 유효한 이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80점에 이르는 고야의 ‘로스 카프리초스’ 연작은 당대 스페인의 귀족과 성직자, 그들로부터 비롯된 사회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 작품이다. 피트먼의 카프리초스 연작 또한 사회의 어두운 면을 풍자하려는 고야의 의도를 따른다.

가로와 세로 모두 각 2m를 넘나드는 대형 캔버스에 거꾸로 매달린 사람의 몸, 바닥이나 공중에 널브러진 듯 몸이 축 처진 인형, 인디언의 것처럼 보이는 각종 상징물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또렷한 색으로 불협화음을 내듯 존재감을 보이는 그림 속의 물체들 사이로 디킨슨의 시구가 말풍선처럼 흐른다. 노트에서 볼 수 있는 가로줄 등으로 구획이 나눠진 그림은 만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남북전쟁의 참상을 다룬 디킨슨의 시 내용은 예사롭지 않다. “온몸을 삼켜버리는-/너무나 끔찍한 고통-/…/뼈가 산산조각 나지만-/넋 나간 사람은-안전하게 가는 것처럼”(카프리초스 #2).
피트먼은 “작품이 과거에 완성됐음에도 아직도 역사는 반복되고,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도 반복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작품을 그린 2015년에도 유럽에서는 극우 정당이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목소리를 내며 극우화가 사회 문제로 비화하고 있었다. 그 우려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등에서 보듯 전 세계를 관통하는 문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같은 시기 그린 작품이지만 야상곡 연작은 다른 분위기를 낸다. 카프리초스가 세계를 향해 일종의 메시지를 던지는 도구라면, 야상곡은 “해 질 녘에 하루를 돌아보고 회복하는 시간, 육체를 벗어나 자유를 느끼는 시간”을 나타낸다고 피트먼은 설명했다. 피트먼도 카프리초스를 그리며 탈진하는 것을 느끼던 중 야상곡을 그리며 회복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올해 상반기 전남도립미술관에서의 회고전을 마친 피트먼은 “어떤 작품은 만들어진 지 50년 뒤에서야 세상의 주목을 받는 경우도 있다. 1940·1960년대 작품이 갑자기 오늘날에 던지는 메시지가 공감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며 “김환기의 작품 중 오래전에 완성된 것을 지금 보는 데도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다. (10년 전에 그린)제 작품도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고뇌를 잘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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