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수지·김고은, ‘감정 결여’ 여주인공이 뜬다

2025-11-24

“아무도 날 함부로 할 수 없는 높은 곳까지 올라갈거야. 가장 높은 꼭대기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 불행해도 상관없어. 난 태어나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으니까.”

배우 김유정이 연기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친애하는 X’의 백아진은 목표를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인물이다. 상대를 흔드는 말투, 계산된 표정 변화, 꾸며낸 웃음 뒤 섬뜩한 눈빛으로 소시오패스 성향을 드러낸다.

김유정은 감정을 숨긴 분위기와 섬뜩한 안광으로 원작 웹툰 속 캐릭터를 재현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작품은 지난 6일 공개 이후 티빙 유료 가입 기여자수 2주 연속 1위(주말 기준)를 기록했고, HBO Max·디즈니플러스 재팬·라쿠텐 비키·스타즈플레이 등을 통해 공개돼 미국·영국·프랑스·인도 등 108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네이버웹툰에 따르면 북미 플랫폼에서 원작 조회수는 40배 증가했다.

이처럼 감정 표현을 최소화한 여성 캐릭터가 작품의 중심에 서는 흐름은 최근 스릴러 전반에서 두드러진다. 김유정뿐 아니라 박은빈·수지·김고은 등도 ‘감정 결여’ 여성 인물을 연달아 맡으며 장르의 변화가 감지된다.

男이 ‘사건 중심’이라면 女는 ‘심리전 중심’

과거 ‘마우스’(이승기), ‘악의 꽃’(김지훈), ‘빈센조’(옥택연) 등 남성 소시오·사이코패스 드라마는 잔혹한 사건과 물리적 폭력 위주로 전개됐다. 이 인물이 뒤에서 얼마나 나쁜 행동을 하는가에 집중한 연출이다.

방영 중인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조각도시’ 역시 같은 계보에 있다. 도경수가 연기한 악역 안요한은 사람 목숨을 건 게임을 설계하며 즐기는, 감정 결여와 잔혹성이 결합된 캐릭터다. 그는 피가 튀는 범죄 현장 앞에서도 “핏자국이 많아 귀찮다”고 투덜댈 만큼 공감 능력이 없다. 게임판을 깔아 죄수들을 서로 겨루게 하는 그의 방식은 극단적 스케일과 자극으로 긴장을 만든다.

여성 사이코·소시오패스는 폭력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백아진은 감정을 비워낸 얼굴과 관계 조작, 미세한 말투의 변화로 긴장을 끌어올린다. 시청자의 불안은 폭발하는 사건이 아니라 “저 표정의 속뜻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데서 생긴다.

공희정 평론가는 “남성 악인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가 중심이었다면, 요즘 여성 중심 스릴러는 ‘왜 그 사람이 그렇게 되었는가’를 따라가는 과정 중심 서사”라고 이 차이를 설명했다. 이어 “여성 캐릭터는 사회 구조나 가정폭력 같은 현실의 균열을 심리를 통해 드러내기 때문에 시청자는 더 깊이 몰입한다. 감정이 비워진 캐릭터의 빈자리에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며 위로를 얻는 역설적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 사이코패스가 여는 새로운 스릴러

지난 추석 때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수지가 연기한 기가영 역시 감정을 잃어버린 존재다. 사이코패스 성향으로 인해 어머니에게 버려져 할머니 손에 자랐다. 로맨스 장르지만 기가영의 감정 부재에서 출발하는 여러 상황을 코믹하면서도 진지하게 보여준다. 감정을 배운대로 표현하는 기가영에 주변 사람들은 공포를 느낀다.

올 3월 공개된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하이퍼나이프’에서는 박은빈이 사람을 살리는 의사이자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 정세옥을 연기했다. 세옥이 만들어내는 공포는 살인의 현장보다 스승 덕희(설경구)와의 대화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생각하는 방식이 닮은 두 사람은 서로의 약점을 찾아 서로 물어뜯는 애증의 관계로 긴장감을 자아낸다.

정덕현 평론가는 “여성 캐릭터는 더 이상 피해자 자리에 머물지 않고, 타인을 조종하는 위치에 놓임으로써 새로운 카타르시스를 만든다”며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와 같은 극단적 설정은 기존 여성 캐릭터의 고정된 틀을 깨기 위한 장치”라고 분석했다. “젊은 세대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쿨하고 냉정한 여성상을 선호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12월 5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자백의 대가’도 여성 사이코패스를 내세운 미스터리 스릴러다. 김고은이 정체불명의 모은을 연기하며, 남편 살해 용의자인 윤수(전도연)와 대립각을 세운다. 예고편에서는 감정을 읽기 힘든 김고은의 눈빛이 공개돼 기대감을 높였다. 김고은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연기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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