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이 불편한 이들에게 광고가 속삭인다 “당신은 소중해”

2024-10-16

2016년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서울이 최초로 발간되자 1-스타부터 3-스타까지 별점을 받은 식당이 큰 화젯거리였다. 이후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 매년 발표되면서 많은 사람이 호텔이나 비행기 좌석처럼 식당을 등급으로 구분하는 데 익숙해졌다. 최근에는 유명 셰프가 대거 등장한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흥행으로 파인 다이닝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나 아닌 듯’ 느끼는 가면증후군

대다수가 경험하는 일반적 현상

과도한 고급전략 역효과 낼 수도

고급 레스토랑은 특별한 요리와 우아한 분위기를 즐기는 곳이지만, 왠지 마음이 불편한 사람도 있다. 보스턴 대학 나일라 오르다바예바(Nailya Ordabayeva) 교수의 연구가 그 배경을 설명해준다. 식사 가격이 150달러, 25달러인 두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방문객을 조사했더니 고급 레스토랑 고객은 스스로 진실하지 않다고 느끼는 불편감 수준이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다. 성공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와 공간이 나에게 과분하게 느껴지고 ‘내가 남보다 더 나은 것을 누릴 자격 있는가’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미쉐린 식당에서 불편했던 이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소비하는지로 자신을 나타낸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고가품을 사용하면 특별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성공과 권력을 상징하는 명품 브랜드는 소비자가 우월감을 느끼게 하고 특권층의 일원이라는 신호를 전달한다. 한편 스스로 특별하지 않고 특권층에 속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명품 소비의 경험은 즐겁지만은 않다. 오르다바예바 교수는 고가품 사용이 자신의 진짜 모습과 다르다고 생각해 진실감이 하락하고 심리적인 불편감을 느끼는 현상을 소비자의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으로 설명한다.

가면 증후군은 성공, 승진과 같은 긍정적 결과를 자신의 노력이 아닌 우연의 결과로 여기는 심리를 뜻한다. 공정한 과정을 통해 이룬 성과임에도 운이 좋았다거나 누군가의 실수로 인한 가짜 성공이라 생각해 자기 불신과 불안, 스트레스로 고통받는다. 과거에는 고학력 전문직 여성이나 유색인종이 주로 겪는 현상으로 인식됐는데, 개념을 정립한 당사자가 실제 가면 증후군을 겪은 두 여성 심리학자이기도 하다. 최근 연구에서는 성별 차이가 유의하지 않고 대다수가 경험하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분석된다.

오르다바예바 교수는 명품 매장이 밀집한 뉴욕의 한 지역에서 소비자 조사를 진행했다. 자동차, 의류, 시계 등 참가자가 소유한 명품의 종류와 그 물건을 사용할 때의 기분을 물어보니 놀랍게도 고소득층 중에서도 스스로 진실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불편감을 느낀다고 대답한 사람이 많았다. 예를 들어 샤넬, 루이비통 등 여러 개의 명품 백을 소유하고 있는 한 여성은 레스포색(LeSportsac) 같은 중저가 가방을 들 때 자기다움과 편안함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보유한 명품을 자주 사용하지 않거나 더는 구매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람들도 많았다.

부자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마사즈 빈야드(Martha’s Vineyard)에서 만난 사람들을 분석한 결과도 흥미롭다. 250달러짜리 에르메스 비치 타월과 25달러 자라(ZARA) 타월을 사용하는 상황을 설정하자 대부분이 에르메스 수건을 쓰는 것은 자신답지 않다고 응답했다. 파티에서 마실 샴페인을 고를 때도 중저가 제품보다 돔페리뇽을 선택할 때 진실감이 크게 하락했다. 충분한 경제력을 지닌 부유층도 에르메스 수건을 쓰고 돔페리뇽을 마시는 것을 진정성 없는 행위로 여긴 것이다.

여성 자존감 높여준 로레알 광고

가면 증후군을 겪는 사람은 대화를 주도하거나 주장을 펼치는 데 소극적이다. 과대평가된 자신의 진짜 실력이 드러날까 두렵고 남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것이란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소비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파티에서 최고급 와인을 마실 때 진실감이 하락한 소비자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거나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는 등 행동의 적극성이 유의하게 낮아졌다. 가면 증후군이 겸손함과 성실한 자세로 이어지는 측면도 있지만, 자기 불신과 불안감이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은 더 심각하다.

고가 명품이 아니라도 심리적으로 위축된 소비자는 자신의 가치를 절하하고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 사용을 꺼릴 수 있다. 과소비를 조장해선 안 되지만, 소비자가 의미 있는 경험으로 생활 만족도와 삶의 질을 높이도록 이끄는 것도 마케팅의 역할이다. 로레알의 경우 1971년부터 ‘당신은 소중하니까(Because you’re worth it)’란 슬로건을 내세운 캠페인을 진행해오고 있다. 남성 중심적이었던 시절 여성을 향해 던진 ‘당당하게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는 메시지는 여성의 자존감 증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헤드셋 브랜드 비츠(Beats)는 프리미엄 라인 광고에 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LeBron James)를 등장시키고 ‘당신은 최고를 누릴 자격이 있다(You deserve the best)’는 문구를 사용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한 소비자라면 좋은 품질의 헤드폰으로 음악을 즐기는 여유를 가지라는 의미를 담았다. 한국에서도 20여 년 전 현대카드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를 통해 쉼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제품과 서비스를 누릴 가치가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반향을 일으켰다.

‘최상급’ ‘7성급’이 불편한 소비자도

최상급, 7성급 등 제품과 서비스에 높은 등급을 매기며 더 나음을 강조하는 기업이 많다. 상품의 서열화는 소비자의 선택을 간편하게 해주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곧 사용자의 계급화로 이어져 일부 소비자가 제품의 상징성과 자아의 불일치로 인한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도록 한다. 높은 실적을 쌓아야 구매 자격을 부여하는 명품업계의 전략도 핵심 고객이 자신을 낮추는 성향이라면 역효과를 부를 가능성이 크다. 특별한 경험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이유, 소유한 제품을 마음 편히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 등 소비자가 치르는 심리적 부담을 이해할 때 전략의 깊이가 달라질 수 있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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