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모없는 풀’ 잡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여태껏 잡초는 농업이나 생활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식물로만 인식되어 왔다. 잡초는 농작물의 수량을 감소시키고 별도의 노동력을 요구하는 생산성 저하의 원인이자, 정원이나 조상 묘소를 볼품없이 만들고 환절기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흉으로 멸시받으며 제거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잡초의 다양한 활용도가 밝혀져 우리 생활에 이용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잡초로 잡초를 잡는’ 생물적 방제의 소재, 차세대 바이오에너지의 원료, 토양 보존, 사막화 방지 자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의학, 민간요법에서 사용되던 풀들의 기능성이 밝혀져 약재, 의약소재, 건강식품과 별미음식으로 재탄생하고 있으며 환경 정화, 향기를 즐기는 관상·방향식물, 천연염색, 경관, 압화공예 등에도 활용되고 있다.
‘농사의 적’이 아닌 농사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 잡초는 재조명되고 있다. 잡초는 지구 온난화에 따라 빈발하는 여름철 폭우, 겨울철 건조로 인한 토양의 유실을 막는 식물로서 역할을 한다. 영양분 고갈 등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에 잡초를 심으면 토양물리성이 개선되어 농업에 적합한 토양으로 변하는데, 잡초가 농경지를 토양미생물이 살기 좋은 환경으로 개선해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소의 공급과 평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지원한다.
잡초는 제초제를 대신해 다른 잡초를 방제하는 친환경 농법으로 개발되기도 한다. 들묵새와 긴병꽃풀, 토끼풀 등은 밭 토양을 피복하여 다른 잡초가 나지 않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콩과식물인 녹비작물들은 토양유실을 억제할 뿐 아니라 토양에 질소를 공급하여 질소비료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 좀씀바귀, 돌나물, 약모밀, 섬쑥부쟁이 등의 자생식물들이 최근 피복식물 소재로 이용가능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산이나 들에서 주로 자라던 억새와 연못, 개울가에서 자라는 부들, 단풍잎돼지풀, 돼지감자 등은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친환경 바이오 에너지원으로 부각되고 있다. 잡초는 특유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인해 기후변화 등으로 가속화되는 사막화 확산과 황사 발생을 억제시킬 기대주로 부상하고 있다. 토양 침식을 방지하고 수질을 정화하는 효과도 인정되어 산지와 논둑, 경사밭, 하수처리장 등에 심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민간요법이나 한의학 서적에 기록된 식물들의 기능성이 확인되면서 다양한 식품과 요리로 개발되고 과거 전쟁이나 기근이 심할 때는 식량을 대신하던 구황식품으로 이용되던 것들이 최근에는 별미음식으로 주목받기도 한다. 참살이 트렌드와 관련해 약재로서의 효능이 주목받으면서, 그동안 괄시와 천대를 받던 잡초가 식의약 신소재로 새로이 각광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잡초의 왕성한 광합성 능력 때문에 공기가 정화되는 특성을 이용하여 기존 실내식물을 대체하는 공기정화, 방향식물로의 활용 가능성도 크다. 꽃을 피우는 자생식물로 산과 들에 적응하여 돌보지 않아도 잘 자라는 야생화는 자연 생태계를 보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 장식용 압화(壓花, 꽃누르미)와 음식과 의복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천연염료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농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천대받던 잡초를 이제 미개발 식물 자원으로 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1980년대 이후 항암제의 60%, 저분자 신약의 49%가 식물자원 유래 물질에서 개발되었으며 세계 유수의 제약회사들은 매년 10억 달러 이상을 식물자원 탐색에 투자하고 있다. 다양한 잡초의 활용도를 밝혀내어 부가가치를 높이는 연구를 위한 투자와 산·학·연 컨소시엄 구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생태, 환경, 에너지, 생명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연구 추진을 기대해 본다.
박진우 국립농업과학원 식물병방제과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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