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어둑 저녁녘이 오면 난 테슬라가 싫어진다. 치켜뜬 채 째려보는 매너 없는 ‘전조등 눈뽕’이 싫다. 뒤따라가 브레이크등으로 헷갈리게 하는 위험천만한 빨간 방향지시등도 싫다. 이름부터 공정거래법 위반 격인 ‘완전자율주행(FSD)’은 또 뭔가. 상향 전조등이나 빨간 깜빡이 따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낳은 부산물이다. 미국 인증 기준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1기 트럼프 정부 때 한·미 FTA 재협상 이슈가 불거졌다. 당시 담당기자로서 난 미국차의 허점부터 찔렀다. 한마디로 이렇다. “바보야, 미국차가 안 팔리는 건 비관세 장벽 탓이 아냐, 품질이 시원찮아서지.” 덩치만 크고, ‘기름 먹는 하마’로 정평난 미국차를 누가 사겠나. 간혹 ‘아메리칸 머슬카’ 로망은 나도 있지만, ‘유럽산 명마’를 넘어서긴 힘든다. 여기에다 무역장벽이 어떠니, 저떠니 떠들어봐야 길냥이도 코웃음칠 일이다.
급발진을 반복하는 ‘뿔난 망아지’ 때문에 온 세상이 시끌벅적, 뒤죽박죽이다. 관세폭탄 후폭풍으로 지난 주말 미 뉴욕증시에서만 9630조원 넘게 날아갔다. 이런데도 트럼프는 “버텨라”라고 주문한다. 그의 목표는 분명하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다!
사실 트럼프의 길은 MAGA와는 반대 방향이다. ‘위대한 미국’은 논란 속에도 민주주의를 전파하고, 시장을 확대한 것이라고들 평가해왔다. 한데 트럼프는 나토로 대표되는 세계 안보질서를 재편하고, 자유무역에 기반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도 뒤흔들겠단다. 대체 무슨 심보일까.
그의 당선 배경 중 하나가 고물가에 따른 서민들 경제난이었다. 일가족이 간단한 외식을 하는 데 수십만원씩 든다던 게 바이든 정부 말년의 풍경이다. 이에 ‘행복하십니까’ ‘잘살아보세!’라며 부활한 트럼프다.
그런 미국에선 지금 더한 일들이 벌어진다. 마트에서 계란이나 휴지 사재기 사태가 빚어진다. 관세 후폭풍이 몰아닥치면 미국민은 아이폰에 500만원 넘게 내야 할 것이란 추산까지 나온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이런 관세정책을 “생물학에서 창조론 수준”이라고 폄하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장사꾼 트럼프는 왜 저러는 걸까. 핵심 목표는 미국 내 일자리 늘리기다. 당장 가격이 오르더라도, 공장을 옮겨오면 결국 더 이롭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애플은 절대 중국 생산거점을 미국으로 돌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 했다. 급기야 ‘오른팔’ 일론 머스크마저 자유무역을 강조하면서 트럼프의 관세폭탄 책사에게 “멍청이”라며 비판 메시지를 연일 날려댄다.
다만 돈키호테 같은 트럼프의 좌충우돌이 ‘뜻하지 않게’ 선사하는 교훈은 있다. 고장난 폭주 기관차 같은 세계화에 대한 경고다.
지금 벌어지는 해프닝을 보면 국제교역이 절대선일까란 의문을 품게 한다. 지난 수십년간 환경 파괴, 생물다양성 훼손의 주요 근원이 세계화다. 한우가 비싸다며 미국 소고기를 ‘무한리필’로 마구 흡입하고, 불필요한데도 더 많은 소비를 부추겨 냉장고부터 키우게 만든 게 WTO 체제다. 세계화의 덫이다.
DB증권 보고서는 “중국이 대응해 위안화를 평가절하한다면 핵폭탄급 충격이 올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미국은 여차하면 ‘수소탄’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난 이번 관세는 예고편으로 본다. 본편엔 1985년 ‘플라자합의’ 같은 미 달러 약세를 노린 더한 꼼수가 나올 수 있다. 당시 엔화 가치는 3년 만에 100% 뛰었다. 그 쓰나미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고, 미국의 초강대국 부상이다. 트럼프는 이번에 대상을 중국으로 삼고 싶어 할 테다.
일각에선 지금 장면들이 흡사 1930년대 대공황 전 같다고도 한다. 끝내 돌파구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결국 G2 패권다툼 문제다. 과연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미·중이 비켜갈 수 없는 운명일까.
우린 이대로 멱살 잡힌 채 끌려다녀야 하는가. 외교술이 절실한 시점이다. 중국, 북한, 러시아, 일본을 매개로 한 미국과의 ‘밀당외교’가 한 대안이다. 미국에서 ‘한·중·일 FTA 논의’에 긴장하는 모습만 비춰봐도 그렇다. 이참에 ‘동아시아경제협력체’ 밑그림도 그려볼 만하다. 당장은 꿈만 같지만, 한·중·일에 베트남·인도를 더하면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유럽연합(EU)과도 더불어 세계 질서에 새 불판을 갈아야 하지 않나 싶다.
세상의 악을 무찌르겠다던 돈키호테는 끝내 망상을 이루지 못한 채 스러져갔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가 살아와도 ‘트럼프의 해피엔딩’은 차마 못 그려줄 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