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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기세가 무섭다. 최근 중국의 한 스타트업이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를 개발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정보통신(IT) 기술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 주며, AI 시대에 중국이 미국보다 강력한 패권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IT 분야뿐만 아니라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연초 학술지 네이처 출판사가 공개한 네이처 인덱스에서 중국이 처음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네이처 인덱스는 물리학·화학·생명과학·의학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을 기준으로 국가별 연구 경쟁력을 평가하는 지표다. 중국은 물리학과 화학 분야에서 미국을 크게 앞서고, 생명과학과 의학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중국 기초과학, 세계 1위 등극
천인계획이 결정적 역할 해내
한국 과기정책은 졸속·자해적
국제공동연구, 도움 안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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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2기 트럼프 행정부는 연구개발비의 대폭 삭감을 예고하고 있어서 향후 중국과의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과학기술은 창업과 기업 혁신을 촉진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될 뿐 아니라 첨단 무기 개발을 통해 군사력 강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중국이 어떻게 불과 한 세대 만에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강국이 되었는지 심층분석하고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변방에서 급성장한 중국 과학기술
필자가 1990년대 미국에서 유학했던 시절만 해도 중국은 과학기술의 변방이었다. 다만 당시에도 미국 대학에 중국 유학생들이 매우 많았고 대다수가 학위 취득 후 미국 내 대학과 기업·연구소에 자리를 잡았다. 중국 정부는 이들을 본국으로 유치하는 것이 과학기술 발전의 핵심이라 판단하고, 1990년대부터 ‘백인계획’ ‘천인계획’을 잇달아 수행했다. 특히 세계 정상급 과학자 1000명을 유치하고 파격적으로 지원한다는 ‘천인계획’은 중국 과학기술 도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생명과학과 의학의 최첨단인 유전자 교정 분야만 하더라도, 2012년 우리나라와 미국 연구자들이 경쟁적으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연구하고 있을 때, 중국에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25년 현재,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이 분야 전문가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그 결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많은 회사가 창업되었고, 신약개발을 위한 임상시험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불과 10여 년 만에 중국이 신약개발의 최첨단 분야에서도 선두주자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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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의 기초과학 경쟁력은 어떠한가. 네이처 인덱스에 의하면 한국은 현재 세계 8위다. 10여 년 전 10위권밖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스페인·이탈리아·스위스 등 유럽 선진국을 하나씩 추월한 결과다. 이제 우리 앞에는 중국·미국·영국·독일·일본·프랑스와 캐나다만 남았다. 모두 우리나라보다 인구도 많고 경제 규모도 훨씬 큰 나라들이다. 프랑스와 격차가 크지 않아 10년 내 6위가 될 수도 있고, 일본의 하락세가 뚜렷해 10여 년 후 5위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인도와 같은 신흥국의 추격도 무섭기 때문에 순위가 내려갈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정부의 정책과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노력과 성과에 달려있다.
거꾸로 가는 한국 과기정책
그러나 최근 우리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과학기술계 카르텔’을 청산한다는 허황된 명분으로 연간 연구개발 예산 30조원 중 4조원 이상을 삭감했다. 이로 인해 많은 과학자가 연구를 접거나 해외로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국제 공동연구를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미국 대학과 연구소와의 협력을 대규모로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를 쉽게 풀이하면, 한국의 과학자들은 카르텔을 형성해 연구비를 나눠 먹고 성과는 내지 못하니 미국에 연구비를 퍼주어 우리 과학자들이 한 수 배워 오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는 세상의 변화와 과학기술에 무지한 정치인과 관료들이 졸속으로 만든 자해적 정책이다. 미국과 첨단 분야에서 경쟁해 세계 1등이 되는 것은 어려우니 조공을 바쳐서 2등이라도 하자는 사대주의적 발상인데 미국이 이에 호락호락 응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실제로 미국의 정상급 연구자들은 이미 미국 정부와 민간으로부터 연구비를 충분히 받고 있기 때문에 굳이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다. 더욱이 미국 국내법에 의해 공동연구 결과 발생하는 지적재산권은 미국 대학과 연구소에 귀속되지 연구비를 지원한 한국 정부에 귀속되지 않는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제 공동연구 사업은 그 정책 효과가 중국의 천인계획과 정반대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미국 대학의 연구자들은 대부분 한국 출신 교수들이다. 천인계획은 해외에 진출한 자국 연구자들을 모국으로 불러들여 과학기술 경쟁력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한 반면 한국의 정책은 해외로 나가는 것을 장려한다. 이는 자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이 아니고 오히려 훼손하는 정책이다. 이제라도 방향을 전환하여 한국판 천인계획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1000명의 해외 과학자들에게 국내에서 연구하는 조건으로 향후 10년간 연간 10억원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에 필요한 예산은 연간 1조원이다. 30조원 연구개발비의 3%를 넘는 수준으로 우리 사회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는 검증된 방법이다. 중국이 불과 한 세대 만에 세계 최강의 과학기술 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만든 정책이다.
김진수 KA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