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대기 자금으로 분류되는 국내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직후 순식간에 10조 원 가까이 줄었다. 금융투자 업계는 상당액이 해외 주식, 가상자산 등 미국발(發) 유망 투자 대상과 LG CNS 공모주 청약 등으로 옮겨 간 것으로 추정하면서 CMA 이자 수익이 연 2%대까지 낮아진 만큼 개인 투자 자금 이탈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3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CMA 잔액은 이달 21일 87조 613억 원에서 23일 77조 3269억 원으로 9조 7344억 원 감소했다. 특히 22일 하루에만 9조 319억 원이 증발했다. CMA 잔액이 70조 원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8월 12일 79조 5056억 원 이후 처음이다. 전체 규모로는 지난해 7월 22일 76조 8158억 원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CMA 잔액의 하루 감소액 기준으로는 지난해 7월 3일 9조 3054억 원 이래 6개월 만에 가장 큰 수치다.
CMA는 투자자가 맡긴 자금을 증권사가 국고채·회사채나 양도성예금증서(CD) 등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통상적으로는 하루만 맡겨도 시중은행 입출금 통장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준다.
급감한 CMA 잔액은 대부분 개인 잔액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CMA 잔액은 21일 74조 9548억 원에서 23일 65조 8361억 원으로 9조 1187억 원이 감소했다. 같은 기간 법인 CMA 잔액은 12조 1065억 원에서 11조 4908억 원으로 6157억 원 줄었다. 운용 대상별로는 환매조건부채권(RP)형·머니마켓펀드(MMF)형·종합금융(종금)형·발행어음형·머니마켓랩(MMW)형에서 모두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들은 20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 미국의 새 정부 정책이 가시화하면서 이와 관련한 자산 쪽으로 CMA 자금이 상당 부분 이탈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은 20일 하루에만 미국 주식을 2억 9444만 8812달러(약 4215억 원)어치나 순매수했다. 앞서 CMA 잔액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전인 지난해 12월 3일까지만 해도 83조 8355억 원에 불과했다가 이후 시장 관망 심리 확산으로 87조 원까지 웃돈 바 있다. 당시에는 원·달러 환율이 극도로 불안정한 흐름을 보였기에 투자자들이 해외 주식을 매수하는 데도 미온적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여기에 최근 CMA 계좌 수익률이 낮아진 점도 자금 이탈을 부추긴 요인으로 꼽았다. 현재 각 증권사의 CMA 계좌 수익률은 3% 초반인 미래에셋증권 RP형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연 2%대에 머물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국내외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 등을 고려해 CMA에서 이탈한 자금이 앞으로도 해외 주식이나 가상자산 등으로 상당 부분 이동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고경범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미국 예외주의에 따른 경제성장 기대로 관련 주식형 상장지수펀드(ETF)를 중심으로 자금 유입이 늘고 있다”며 “달러 강세로 미국 이외 지역에 대한 투자심리는 강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