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원잠 vs 핵잠

2025-11-17

중국 인민일보, CCTV나 북한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을 부지불식간에 중국 언론, 북한 언론이라고 부르는 것은 참으로 어폐가 있다. 이른바 ‘언론(言論)’의 본질인 표현의 자유가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언론, 언론사 활동의 핵심인 권력 감시, 정부 견제 기능 등의 부재 때문이다. 매체나 미디어, 아니면 성격 그대로 기관지(인민일보·노동신문)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

정부가 핵추진잠수함(핵잠) 명칭을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이라고 바꿨다가 핵추진잠수함으로 재변경하는 과정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한·미 정상회담(10월29일) 때 이재명 대통령이 사용한 핵잠을,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원잠으로 통일했다고 했다가(5일 국회 국방위), 다시 대통령실이 핵잠으로 최종 정리했다(14일)고 한다.

정부가 이번엔 동북아 3국 표기 순서를 한·중·일로 통일한다고 한다. 동북아 3국 표기는 보수 정권에서는 한·일·중, 진보 정권에서는 한·중·일로 번갈아 변경됐다. 중국에서는 중·일·한, 일본에서는 일·중·한으로 쓴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3국 상호 관계의 상대적 경중, 전통적 어법 등에 맞춘 것이다.

문제는 핵잠·원잠, 한중일·한일중 사례에서처럼 정권의 용어 사용법이 오락가락할 때마다 한국 언론도 고민 없이 덩달아 바뀌었다는 것이다. 정치적 의도, 입맛에 따라 용어, 명칭을 바꾸는 정권도 혀를 끌끌 차게 하지만, 나름의 고민이나 논리, 원칙 없이 부화뇌동하는 대다수 ‘매체’도 자성해야 한다. 정권이 핵잠이라고 하면 핵잠이고, 원잠이라고 하면 원잠인가.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은 원자폭탄인가 핵폭탄인가. 정부가 정해줘야 쓸 수 있나. 한·중·일도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에서처럼 우리 어법에 합당하다는 식으로 나름의 논리가 있어야지, 정부가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라면 부끄러운 일이다. 북한과 미국 관계를 지칭할 때마다 북·미가 아닌 미·북이라고 하는 일부 매체의 용법 자체에 동의하지 않지만, 자기의 확고한 중심이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수 없다. 언어는 이데올로기이고, 이데올로기는 생각을 지배한다. 용어 사용에서의 주체적 관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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