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큰’ 하정우, ‘노나없’ 바르뎀을 보았다…‘끝까지 가는 두려움’ 1인자의 귀환

2025-01-27

입력 2025.01.27 09:23 수정 2025.01.27 09:24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추격자’의 영민이 ‘브로큰’의 민태로 돌아왔다. 붕어빵 컴백이 아니라 색도 향도 다르다. 분명한 건 한 치의 타협도 없이 끝까지 몰고 가는 긴장감으로 심장에 타격감을 안기는 1인자, 배우 하정우가 귀환했다는 사실이다.

배우 하정우의 캐릭터 이름에 ‘민’이 들어가면 끝까지 간다.

레바논 무장세력에 납치돼 생사도 모르던 한국 외교관, 이‘민’준은 야근하다 받은 정체불명의 암호 타전 하나를 허투루 넘기지 않고 얼굴도 모르는 외교부 선배를 구하겠다고 총알 쏟아지는 레바논으로 간다. 중동과 내근을 벗어나 미국 파견 한 번 나가보겠다고 시작한 비공식 작전이었지만, 상황이 험악해질수록 자국민 보호의 사명감이 마음속에서 깨어나며 민준은 물불 가리지 않고 끝까지 가는 첩보원이 된다. (영화 ‘비공식작전’, 감독 김성훈)

편법의 비공식 울타리를 넘어 범법의 연쇄살인마가 되면 전혀 다른 긴장감이 형성된다. 우리 사회 사각지대, 취약한 매춘부만 노리는 지영‘민’은 브레이크 없는 살인을 이어 간다. 수법은 점점 대담해져서 노인 부부를 없애 억지로 만든 빈집을 아지트로 살인을 일삼던 영민은 끝내 문밖을 나서 동네 개미슈퍼마저 살해 현장으로 만든다. 생활용으로 쓰이던 도구와 공구들이 눈을 질끈 감게 하는 살인 흉기가 되는 순간 엄습해 오는 두려움은 가히 공포다. (영화 ‘추격자’, 감독 나홍진)

영화 ‘브로큰’(감독 김진황, 제작 사나이픽처스‧을지기획, 배급 ㈜바른손이앤에이)의 민태는 민준 이상의 명분을 쥐고 있고, 영민 이상의 두려운 무기를 들고 있다.

배‘민’태는 부모 정 모르고 자란 못난 동생 석태(박종환 분)와 살아주는 여자 문영(유다인 분)이 떠나지 않도록, 공사장 인부로 번 땀에 밴 돈을 다달이 송금하며 살아간다. 한때 폭력조직 창모파의 에이스였으나 자신을 따라 조직에 들어왔다가 망가진 동생의 인생을 구해보겠다고 창모(정만식 분)를 대신한 감옥살이의 대가로 손을 씻고 평범하게 살아가려 애쓴다. 이쯤 되면 형이 아니라 아버지다.

누군가에게는 평범이 가장 어렵다. 자식 같은 동생이 시체로 돌아왔다. 그것도 재수 씨 문영이 일하는 노래방에서 일이 벌어졌다. 그날 밤의 진실을 알고 있을 문영이 사라졌다. 무턱대고 문영을 살인범으로 의심해 끝까지 쫓아가 죽이겠다는 게 아니고 그저 내 동생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고 싶을 뿐인데, 그 진실 추적의 행로가 멀고도 험하다. 실마리라고는 살인을 예고라도 한 듯한 작가 강효령(김남길 분)의 소설 ‘야행’뿐이다.

민태는 자신이 끊어냈던 과거의 방식으로 추적에 나선다. 사람을 패야 하고 때로 진실을 가리려 자신을 죽이려 드는 자들을 죽임으로 맞서야 한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누가 내 동생을 죽였는지는 알아야겠다. 혈혈단신 혼자가 된, 더는 잃을 게 없는 민태의 명분이다.

내 하나뿐인 가족의 죽음, 그 진실을 찾아 반도 끝까지라도 추적하는 민태의 손에는 ㄱ자 쇠파이프가 들려 있다. 성실하게 살아보겠다고 들게 된 배관 파이프가 앞길을 막는 자를 처단해 추적의 길을 여는 살상 무기가 됐다. 인생의 비극적 아이러니에 침통하다.

그래서 더욱, 이보다 두려운 무기가 없다. 파이프에는 자식 같은 동생 죽음의 실체를 알아내겠다는 뜨거운 명분이 실리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겠다는 다짐에 대한 비자발적 포기의 서슬 퍼런 분노가 서린다.

하나뿐인 혈육을 잃은 민태의 반격, 막아서는 자가 많고 그들의 방해가 악랄할수록 힘을 받는 민태의 광기 어린 추적을 따라가는 ‘브로큰’을 보노라면 여러 캐릭터와 그 감정이 떠오른다.

캐릭터의 ‘날 것’ 느낌은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감독 윤종빈)의 유태정, 흡사 다큐멘터리 같다는 호평을 불렀던 살아 펄떡거리는 연기를 연상시키고. 추적의 절절함은 영화 ‘황해’(감독 나홍진)에서 무슨 짓을 해서든 한국으로 간 아내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황해를 건넜던 김구남의 가족애와 풀릴 듯 풀리지 않던 아내 찾기의 처절함이 겹친다.

가족과 사회에 연관한 상처를 가슴에 안은 채 그것을 풀 방법은 폭력밖에 없다는 듯 엔진 풀 가동 질주하는 모습은 히스 레저가 연기한 영화 ‘다크나이트’(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조커를 닮았고. 그 누구도 이길 자 없는 ‘막강한’ 파괴력과 멈출 줄 모르는 직진으로 영화를 보는 관객마저 두려움에 떨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감독 에단‧조엘 코엔 형제)에서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안톤 시거를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연상 작용은 결코 하정우가 하정우를 복제했거나 다른 배우를 흉내 냈다는 뜻이 아니다. 캐릭터의 매력과 배우의 표현력에 있어, 오래도록 관객들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영화사적 명 캐릭터들의 반열에 ‘브로큰’의 민태가 있다는 의미다.

배우 하정우의 연기만을 놓고 보자면, 그는 이미 영화 ‘추격자’가 나왔던 2008년 ‘다크나이트’의 히스 레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을 ‘능가했다’는 평가를 영국 대중지 ‘더 선’으로부터 받았다. 세계적 유명 배우들을 추월한 그해의 배우로 ‘추격자’의 하정우를 꼽은 것이다.

그리고 하정우는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았고, 걷고 걷는 ‘걷는 사람 하정우’답게 계속해서 새로운 캐릭터에 다가갔고, 그 경험의 역사를 응축해 ‘배민태’로 결집해 냈다.

단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노나없)의 차가운 살인 기계 사이코가 주는 두려움이 아니라, 살해의 결과로 튀는 붉은 피가 아니라, 부성 같은 형제애를 가슴에 품고 두려움 없이 달려가는 피의 뜨거움으로 웬만해선 그를 막을 자가 없음을 알린다. 지영민의 망치나 안톤 시거의 가스통과 달리 그가 휘두르는 파이프에 힘이 실리고, 그것을 쥔 민태의 손에 공감이 어리는 이유다.

영화사에 남을 또 하나의 캐릭터, 민태의 추적극을 큰 화면과 좋은 음향으로 즐기길 권한다. 배우 하정우가 자신의 연기 인생 전체의 엑기스를 녹여 만든 캐릭터 민태, 한 마리 포효하는 사자의 날숨을 뛰는 가슴에 담아볼 가치가 있다. 광기의 긴장미를 공간을 채우는 공기로 표현할 줄 아는 무서운 신예 김진황 감독이 민태로 하정우를 원한 이유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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