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 – 김채람, 양소영, 이풀잎 '효자, 시절'

2025-04-02

익산시 남중동의 마당 없는 주택에서 자랐다. 주택을 상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과는 거리가 있는 주택이었다. 소담스러운 골목, 대문, 마당 그리고 화단을 지나 나오는 집의 현관 같은 것들. 나의 어릴 적 공간은 이런 전원 주택 타입은 아니었다. 사거리의 모퉁이에 있었고, 마당이나 화단 같은 건 없었다. 문짝이 하나인 대문을 열면 곧장 계단이 있었고, 그 끝은 바로 현관이었다. 1층은 가게고 2층은 살림집인 주택이었다.

나는 집이 실용적이어서 좋았다. 곳곳의 틈새는 가게를 위해 알차게 사용했고, 막연히 걸어야만 지나갈 수 있는 길 없이 모든 공간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었다. 마당 대신 있는 옥상에서는 햇볕에 빨래를 널거나 화초를 키우고 아빠와 친 텐트에서 여름밤을 나기도 했다.

집 곁의 사거리에서는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사거리의 모두 다른 길로 연결되었다. 다만 동네에 가게랄 것은 우리 집인 그린유리와 하이퍼마트(몇 년 전, 편의점이 되었다.)뿐이었다. 덕분에 우리 집은 동네 사람들이 택배를 맡기거나 택시에서 목적지로 말하는 랜드마크 같은 곳이 되었다.

내가 성장하는 동안 동네는 서서히 바뀌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날마다 내 손을 잡고 집에 데려가 밥을 먹였다던 동네 오빠의 집도 있었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 쉬던 친구네 집도 있었다. 어느 순간 그 집들은 전부 비어서 을씨년스러워졌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나중에는 어디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게 되었다. 그러기를 잠시, 집의 양옆으로 큰 빌라와 거대한 아파트가 들어섰다. 빌라와 아파트가 지어지는 동안 사이에서 말 못 할 고생도 많이 했다. 그러나 이전의 동네가 얼마나 한산하고 어두워 보였는지를 생각하면 무턱대고 거대 아파트가 싫다고 말하기도 망설여졌다.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괴롭고 고민스럽기는 사는 이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레 동네의 변화를 회상한 것은 『효자, 시절』을 읽은 탓이다. 책은 효자주공3단지를 중심으로 그곳에서 살고, 벌고, 떠나고,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묶어 기록하고 있다. 책의 말미에서는 다른 아파트나 커뮤니티의 기록 작업도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사무실 앞 창고에는 아파트를 관리하며 모아두었던 사진과 도면, 각종 영수등들이 정돈되어 있다. 20년 전 효자주공3단지에 처음 왔을 때부터 어지럽게 널려 있던 자료들을 시기별, 내용별로 분류하고 정리한 것이다. 아파트가 재건축되면 다 사라질 흔적들이다. (161쪽)”

그동안의 모든 일을 기록하고 정리해 둔 관리사무소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아 남중동의 그린유리까지 이어졌다. 덩달아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나름대로 복기해보고 싶어졌다. 건너편이 아파트가 된 마당에 부모의 청장년이, 나의 유년기가 녹아있는 남중동 집도 언젠가 밀리고 헐려 사라질지 모를 일이니까.

작년에는 내게도 새로운 동네가 생겼다. 친구와 함께 전주의 97년생 아파트를 고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시작된 나의 새 시절을 가꾸며 『효자, 시절』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최아현 소설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아침대화>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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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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