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이민 정서’ 업고 우익 득세… 미국 이어 유럽도 ‘빗장’ [세계는 지금]

2025-06-28

지구촌 우경화 물결

먹고 살기 힘들자 이민자에 눈총

“범죄·실업 증가… 사회 불안정 요인”

獨 극우 성향 ‘AfD’ 원내 2당 돌풍

英서도 개혁당이 보수 텃밭 잠식

중도·진보 정권도 ‘이민 제한 정책’

獨 메르츠 총리 “불법 이민자 추방”

加·호주는 영주권 발급 한도 축소

“인재 유출 등 국가 경쟁력 악영향”

유럽의 주요 국가에서 ‘반(反)이민’을 기치로 내건 정치세력의 집권 혹은 위상 강화 흐름이 뚜렷하다. 이들 국가가 개방적인 태도로 아프리카, 중동 등에서 유입된 이민자를 품었던 곳인지라 정책 변화의 속도가 더욱 도드라진다. 이는 이민자를 실업, 범죄 증가 등 사회 불안정의 요인으로 보는 경향이 짙어진 데 따른 것이다. 이민자 유입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을 숨기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집권이 유럽 각국의 이런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2025년에도 이어지는 우익의 약진

지난 2월 독일 총선에서 특히 눈길을 끈 건 극우 성향 독일을위한대안(AfD)이 전체 630석 중 152석을 획득해 원내 제2당에 올랐다는 점이었다. 보수 성향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CDU·CSU) 연합은 208석으로 원내 제1당이 됐다.

무소속으로 출발해 지난 1일 대선에서 승리한 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은 반이민·민족주의 성향 법과정의당(PiS)의 지지를 받았다.

포르투갈의 극우정당 셰가(CHEGA!)는 지난달 18일 총선에서 전체 230석 중 60석을 확보해 제1야당에 올랐다. 이는 수십 년간 중도 진보·중도 보수당이 번갈아 집권하던 양당 체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극우 성향의 영국개혁당이 지난달 1일 지방선거에서 시장 2명, 지방의원 677명을 확보하는 등 기존 보수당의 우세 지역을 다수 잠식했다. 우익·민족주의 성향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집권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8일 시민권 취득 요건 완화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열렸으나 투표율은 29%에 머물렀다. 투표 결과가 법적 구속력을 갖기 위해서 50%를 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유럽 주요국의 선거, 투표 결과에서 공통된 점은 반이민을 구호로 내세우는 우익의 약진 혹은 위상 강화다. 금융위기(2008년), 유럽 재정위기(2011년) 여파에서 회복하지 못해 경기 침체, 일자리 부족 등 사회적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이민자들이 사회 불안정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인식에 유럽 각국에서 반이민 움직임이 도드라졌다.

2014년 말 독일에는 ‘서양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 유럽인’(페기다)이라는 조직이 생겼다. 2016년 드레스덴 지역에서 페기다 지지자 1만5000여명이 반이민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페기다 지지는 독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같은 해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는 경찰이 페기다 시위 예정지인 시청 인근 광장을 원천 봉쇄하자 200여명이 광장 진입을 시도해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르완다 이민자 2세 출신 청년이 흉기 난동을 벌여 어린이 3명이 사망하자 전국적인 반이민·반이슬람 폭력시위가 벌어졌다. 최소 470명 이상이 기소됐고, 200건 이상의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는 ‘우익 약진’이란 정치 변화로 귀결됐다. 2015년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독일은 강한 나라다. 그러니 우리는 할 수 있다”며 난민 수용을 천명하고, 이를 국민이 용인했던 독일에서 반이민을 내세운 AfD의 부상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유럽에서 이런 흐름이 더욱 확산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비영리 민간 연구 기관 유럽경제공동체연구회 소속 아사프 라진 교수는 영국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홈페이지에 게재한 연구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이민자를 유치하는 특성이 있는데 이민 유입이 늘어나면 제도적 취약성을 심화시켜 우익 정부의 출범 가능성을 높인다”고 분석했다.

반이민 정책은 단기적으로 사회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여 대중의 지지를 받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경쟁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산업의 발전에 인재 확보가 관건인데 반이민 정책이 인재풀을 좁히는 것은 물론 보유하고 있는 인재를 유출하는 결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라진 교수는 이민에 호의적인 체제에서 적대적인 비자유주의 정치 체제로 정권이 바뀔 때 이민자들의 동향을 분석한 결과 고학력 노동자의 국외 유출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유대주의 근절을 명분으로 하버드 대학교의 외국인 학생 입학 요건을 강화하자 미국의 인재 유출이 현실화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익 약진에 ‘뉴노멀’ 돼버린 반이민 정책 기조

반이민 흐름은 이민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중도 보수, 진보 정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피로감으로 유권자 지형이 우익 정부에 유리하게 구성된 탓에 여기에 부응하는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이끄는 중도 보수 성향 CDU·CSU 연합이 대표적이다. 메르츠 총리는 진보 성향인 사회민주당, 녹색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며 극우 성향의 AfD와는 거리를 뒀으나 이민을 제한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알렉산더 도브린트 독일 내무장관은 지난 5월 기자회견에서 임신부와 어린이 등을 제외한 모든 불법 이민자의 입국을 불허한다며 “적법한 서류 없이 국경을 넘는 이민자를 추방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선거에서는 이례적으로 진보 정권이 재선에 성공한 캐나다와 호주도 마찬가지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총선에서 승리한 뒤인 지난 5월 전 정부에서 증가한 이민자 증가 수준이 주택, 의료 및 고용 문제를 압도하지 않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2027년까지 이민을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낮출 것이라는 계획도 공표했다.

호주는 지난해 5월 2024∼2025년 영주권 발급 규모를 18만5000명으로 밝혔는데, 이는 2023∼2024년 계획에 비해 5000명 줄어든 규모이다. 이어 총선을 한 달 앞둔 지난 4월 초에는 집권 노동당이 현재 약 34만명인 연간 이민자를 내년까지 27만명으로 줄일 것이며 재선될 경우 유학생 비자 수수료를 25% 인상한 2000호주달러(약 177만원)로 책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임성균 기자 imsu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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