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서울 등 일부 지역 주택 가격 과열 양상이 지속되자 추가 대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12일 고위당정회의를 거친 정부는 이르면 이번 주 초 규제지역 확대와 대출규제 강화 등을 포함한 부동산 안정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입니다. 규제지역 확대, 대출규제 강화 익숙한 단어들입니다.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을 준비 중인 이재명 정부지만 어디서 많이 본 장면같습니다.
노무현, 문재인 두 번의 민주당 정권이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것은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결국 부동산 가격 폭등에 있었습니다. 의도와 달리 결과적으로 가격 폭등을 야기한 정책 설계자는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입니다. 두 정권에서 차례로 국정과제비서관, 국민경제비서관 등에 이어 정책실장까지 맡아 부동산 정책 수립을 총괄했던 그는 한 번의 실패를 딛고 또 다시 실패하는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을 해냈습니다. 기사감이 느껴진 이유입니다.
강력한 대출규제·파격적인 공급대책…시장은 들썩
이번 정부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재명 정부 초반부터 부동산 가격이 꿈틀 되자 정부는 강력한 대출규제(주담대 한도 수도권/규제지역 중심으로 최대 6억 원으로 제한, 6.27대책)에 이어 공급대책(5년간 착공 목표: 수도권 중심으로 2030년까지 총 135만 가구 착공. 9.7대책)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진정되지 않자 또 다시 부동산 대책을 내놓겠다는 게 노무현, 문재인 정부와 적지 않게 닮아 있습니다. 시장과 언론에서는 이미 다양한 예측 시나리오를 내놓으며 세번째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기도 전에 실패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부동산 정책 시즌2가 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이번에도 결국 실패하고 정권 초반부터 부동산 가격에 끌려가며 국정동력을 상실하게 될까요. 그나마 이번 정부에 김수현 전 실장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행일까요. 그 자리에는 금융과 경제정책에 정통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있습니다. 그동안 김 실장이 입장을 밝혀온 소셜네트워크(SNS) 게시글과 언론 인터뷰를 보자면 이번 대책 뿐만 아니라 앞으로 현 정부 부동산 정책 방향성을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2022년 대선 직후 펴낸 <격변과 균형>이라는 저서에서 가계부채 문제에서 중요한 부채가 빠져있다며 ‘전세’를 지목했습니다. 해당 내용을 옮겨봅니다.
한국만의 독특한 전세제도는 일종의 사금융이다.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받고 주택을 임대한다. 만기가 되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부채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집값의 40%로 제한된다. 전세금은 사적 계약으로 한도가 없고 대체로 집값 대비 50~80%선으로 은행 대출보다 비율이 높다. 은행 대출보다 위험도가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사적 채무라는 이유로 가계부채 통계에서 빠져 있다.<격변과 균형> p.171~172
전세대출 규제는 서민들 주거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역대 정부가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오히려 전세대출 규제를 완화해주며 서민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식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보증비율을 조정했을 뿐 소극적으로 방치하고 말았습니다.
1주택자 전세대출 한도 2억 원 이하 제한…文과 다른 정책 강도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저서의 내용처럼 전세대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김 실장의 정책의지로 해석됩니다. 실제 지난달 7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 '6.27 부동산 대출 규제' 후속 조치로 1주택자의 전세 대출한도를 2억 원 이하로 제한하는 규제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미 집 한 채를 보유한 상황에서 전세 주택에 입주하려는 수요자의 자금 조달을 막겠다는 취지로 앞서 6·27 부동산 대출 규제 우회로로 꼽힌 '사업자 대출(주택매매·임대사업자 대출)'을 중단하고, 규제 지역(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의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 상한도 현행 50%에서 40%로 강화했습니다. 6.27 대출 규제로 인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6억 원 제한까지 고려하면 빚내서 집사기는 더욱 어려워진 현실입니다.

물론 강력한 대출규제 못지 않게 9.7대책에는 파격적인 공급방안으로 서울·수도권에 향후 5년 간 총 135만 호, 연간 27만 호의 신규 주택을 공급(착공기준)안도 함께 발표됐습니다.
김 실장은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빠르게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막았다”는 것입니다.
Q : 문재인 정부에서도 부동산 정책에 관여했는데 아쉬웠던 점은.
A : “대책이 시장에 후행했던 점, 주저했던 점이다. 그래서 이번 6·27 대책은 새 정부 출범 후 바로 했다. 지난 6월 6일 임명됐는데 들어와서 보니 시장이 방치된 상태에서 불타오르던 상황이었다. 금융위원회에 ‘여러분 책임이 크다. 결자해지하라’고 했다. 대출 규제 대책은 내 임명 일주일만에 준비했다.”
전세대출 DSR 포함 규제대책 만지작
시장은 이번 대책에도 전세대출을 손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실제 금융당국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한도를 현행 40%에서 35%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그간 DSR 규제에 예외로 뒀던 전세대출과 각종 정책대출을 DSR에 포함하는 카드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전세대출 규제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은 같은 중앙일보 인터뷰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Q : 전세대출 규제가 나올 것이란 시장 예상도 나오는데.
A : “전세대출을 줄이면 현실적으로 중산층이 전세가 오르는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 부분이 되게 어렵다. 전세 실수요자에 대한 고민이 있지만, 또 정책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하긴 해야 한다. 참 어려운 영역이다.”
규제의 역설…'똘똘한 한 채'반격

문제는 규제의 역설이 발생한다는 사실입니다. 9·7 부동산 대책에는 국토교통부 장관에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권한을 주도록 하는 방안을 담았고 현재 법개정이 추진중입니다.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토허구역 지정은 지자체장만의 권한이었는데 대책이 발표되면서 성동구와 마포구의 아파트 가격은 크게 움직였습니다. 특히 지방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마포구, 성동구가 토허구역에 지정돼 갭투자 금지, 실거주 제한 등에 묶이기 전 서울의 '똘똘한 한 채'를 사야한다는 심리적 다급함마저 감지됩니다.
전세대출 규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규제 강화로 전세를 내주기보다 집주인 입주가 증가하고, 전세사기의 대명사 격인 빌라 시장이 붕괴하면서 전세 매물 자체가 줄어들자 전세가격도 상승하는 모습입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9월 다섯째 주(29일 기준)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12% 상승해 35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풍선효과까지 야기할라…文정부 답습 지적
전세가 상승은 결국 매매가 상승을 견인하는 요인 중에 하나인데다 대출규제를 6억 원에서 다시 4억 원으로 순차적으로 낮출 경우 실수요자들이 4억 원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아파트를 찾아 나서면서 풍선효과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규제의 역설의 대표적인 사례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입니다.
이를 총괄한 김수현 전 정책실장은 정권교체 후 저서 <부동산과 정치>에서 네 가지 요인을 꼽았습니다. ①부동산 대출을 더 강하게 죄지 못했고 ②공급 불안 심리를 조기에 진정시키지 못했으며 ③부동산 규제의 신뢰를 잃어버린 점과 ④정책 리더십이 흔들린 점을 들었습니다.

그는 대출 억제 실기를 특히 아쉬워했습니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원래 계획대로 좀 더 일찍, 좀 더 과감하게 도입했더라면, 전세대출도 인상분만 적용하고, 주택 구입 시에는 즉시 회수하고, 더 적극적으로는 고가주택 구입 시에는 대출을 금지하거나 비율을 대폭 낮췄더라면. (중략) 욕먹더라도 청년층들의 '영끌'을 더 강하게 억제했더라면” 이라고 밝혔습니다. 만시지탄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부동산 정책을 설계해 정권교체에 빌미를 제공한 장본인이 할 소리는 아닙니다.
학습효과일까요. 김용범 실장은 빠르고 강하게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동산 세금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대선 후보시절 발언에 대해서도 김용범 실장은 “집값 잡는 데 세금(규제)을 쓰지 않는다는 건 오산”이라고 정정하며 모든 부동산 정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가상화폐·마스크대란·한미관세협상…자타공인 해결사
김 실장은 오랜 관료생활을 하면서 해결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교착상태에 빠졌지만 한미관세협상에서도 대미협상의 콘트롤타워로서 실력을 입증하며 각 부처 장관을 진두지휘하고 이 대통령의 결심과 판단의 근거를 정확하게 보고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코로나19로 마스크 대란이 발생할 당시엔 기재부 1차관으로 마스크차관이라고 불릴 만큼 마스크 공급 문제를 해소했습니다. 금융위원회 재직시절엔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로 가닥을 잡은 청와대를 향해 실명 계좌로 거래해야 한다며 보고서를 올려 관철시킨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부동산 전공자인 김수현 전 정책실장과 달리 거시·미시경제와 실물, 정책을 전방위적을 다뤄본 자타공인 해결사인 셈입니다.
김용범 실장이 풀어야 할 경제과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부동산 정책 만큼은 김수현 실장의 만시지탄과는 달리 해결사로서 “빠르고 강하게” 마무리해야 합니다. 김 실장은 이미 정답도 알고 있습니다. 2020년에 올린 김 실장의 페이스북 게시글로 정답을 대신합니다.

<부동산시장: 매매시장과 전세시장의 고차방정식>
매매시장의 변화가 부동산 시장에 새로운 이슈를 가져왔다. 전세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세시장과 매매시장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단기적으로 주택공급이 고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주택 수요자는 매매와 전세 사이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면, 수요는 매매에서 전세로 이동한다. 유동성도 따라 이동한다.
‘영끌’하여 집을 구입하는 대신, 보다 ‘살고 싶은’ 곳으로 옮기기 위한 전세대출이 증가한다.(중략)매매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들이 단기적으로 전세시장의 초과수요를 야기하는 측면이 있지만, 해답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늘어난 수요에 맞추어 전세공급을 증가시킬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전세공급은 대부분 다주택자와 갭투자자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중략)전세시장 안정을 위한 올바른 길은 무엇일까? 매매시장과 전세시장은 단기적으로는 상충관계(trade-off)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동행관계라는 특성을 보인다. 즉, 장기적으로 전세가는 매매가의 일정비율로 회귀하려는 속성이 있다. 따라서 부작용 없이 매매시장과 전세시장을 동시에 안정화시킬 가장 확실한 대책은 신규주택 공급을 확충하는 것이다. 발표된 공급계획을 최대한 신속하게 차질 없이 추진하는 것이, 매매시장 안정을 통한 전세시장 안정이라는 선순환을 유도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2020년 9월 2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