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97〉지각의 자동화 시대

2025-10-22

지난 10월 18일,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X)의 추천 알고리즘에서 모든 휴리스틱(heuristics)을 삭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대신 인공지능(AI) 시스템 '그록(Grok)'이 매일 1억개의 게시물과 영상을 읽고 판단을 대신하게 될 거라고 했다. 언뜻 보면 이는 단순한 기술적 업데이트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훨씬 깊은 문화적 사건이다.

기본적으로 휴리스틱은 세상을 감각하며 살아온 인류의 경험적 축적이다. 이는 단순히 오류가 많은 계산이 아니라, 인간이 복잡한 세상을 견디기 위해 만든 일종의 직관적 기술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일상에서 타인의 표정을 읽고, 사람을 믿을지 말지를 결정한다. 도쿄의 한 바리스타는 손님의 얼굴을 보고 “오늘은 쓴 커피가 좋겠네요”라고 말한다. 이는 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인간의 체온으로 작동하는 판단이다.

하지만 기업과 정치, 그리고 기술 영역에서는 이 감각을 '비효율'로 대한다. 대신 수많은 조직이 숫자와 지표를 통해 인간이 사는 세상을 해석하려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경험은 측정 불가능한 잔여물로 밀려났다.

필자는 이 칼럼을 시작한 이후 3년의 시간동안 계속해서 오늘날의 의사결정이, 기업이든 정치든 인간의 살아있는 경험(lived experience)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이는 직관적 판단을 이끄는 휴리스틱이 인간의 생활세계에서 진정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방해하는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일론 머스크가 '모든 휴리스틱을 삭제하겠다'고 말했을 때, 이는 역설적으로 옳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그동안의 위기 대비 더 커다란 위기이기도 하다. 사실상 인간의 주의(attention)를 코드 바깥으로 밀어내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Grok'은 세상을 이해하지 않는다. AI는 세상을 처리한다. 그렇게 처리된 세계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없고 그저 현실의 질감을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 환원할 뿐이다. 느리게 관찰하거나, 실수하며 깨닫고 발전하는 인간의 리듬이 사라진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칠지를 더 이상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된다. AI가 볼 가치가 있다 판단한 세계만을 접하고 살아가게 될 수 있다.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이 확장되면 될수록, 우리가 잃는 것은 세상을 살아 본 감각이 될 것이다.

기업 경쟁의 본질도 바뀔 것이다. 이제는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는가'가 아닌 'AI가 우리를 보여줄 것인가'로 전환된 '보여질 권리'를 둘러싼 싸움이 될 수 있다. 노출은 더 이상 시장의 결과가 아닌 알고리즘의 선택이 되며 그 순간 브랜드의 언어는 인간의 감정을 설득하는 것이 아닌 AI의 판단 구조에 '읽히는 언어'로 진화해야 한다. 만약 이같은 새로운 시장 언어에 대비하지 못한다면, 해당 브랜드는 거절당한 것이 아닌 '인식되지 못한 채'로 사라지게 된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닌 의미의 문제다.

때문에 이제부터는 더 많은 학습을 위한 머신 러닝에의 투자가 아닌, 기업 리더들을 대상으로 하는 휴먼 언러닝, 즉 잊는 연습에의 투자가 필요해질 것이다. 숫자로 해석하고, 요약으로 판단하는 습관에서 멀어져 사람의 손끝에서, 거리의 냄새에서, 목소리의 떨림에서 아직 AI가 감지하지 못하고 판단할 수 없는 영역에의 감각과 관련 이해를 높이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기술은 인간의 판단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었지, 인간의 판단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볼 세계를 AI가 선별하는 시간이 다가올 때 '무엇이 중요한가'를 결정하는 일은 오직 인간의 몫임을 상기하고 이를 실천으로 이끌 수 있는 다음의 질문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이다. '나는 아직 나의 감각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가?'

머스크가 말하는 '진화'는, 어쩌면 지각(perception)의 자동화일지 모른다.

때문에 새 시대의 센스메이킹이 따라야 할 첫 번째 원칙은 보다 단순해진다. 자신의 감각을 아웃소싱하지 말라. 메를로 퐁티는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아본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 살아봄의 감각을 유지하고 되찾는 일이 앞으로의 기업 리더들에게 잊혀져서는 안 된 기술이다. 삭제되어야 할 것은 인간 편향의 축적일 뿐, 인간의 판단 그 자체는 아니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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