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행복을 찾아 ‘매콤한 드라이브’여, 안녕

2024-10-26

어렸을 땐 상상도 못했다. “차를 바꿨다”는 문장 속에 그렇게 많은 의미가 숨어 있을 줄. 4년 정도 타던 차를 보내고 새 차를 맞이하면서 심경이 복잡해졌다. 보내는 날과 받는 날이 같았는데, 슬픔과 기쁨이 그런 식으로 교차할 줄도 몰랐다. 보낸 차는 미니 쿠퍼 S 컨버터블, 맞은 차는 폭스바겐 골프 2.0 TDI였다. 미니 컨버터블을 들이는 데에는 큰 결심이 필요했지만 결혼이 계기가 되었고, 폭스바겐 골프는 정답에 가까웠지만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혼과 육아 사이, 포기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 점점 명확해졌다.

아내와 나, 둘 중 누군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날엔 미니 컨버터블을 타고 괜히 소월길로 돌아갔다. 15분 남짓일까. 지붕을 열고 한 바퀴 돌면 스트레스가 다 사라져 있었다. 우울감이 수용성이라서 샤워를 하면 좋다는 말은 인스타그램 같은 데서 만날 수 있는 다정한 밈이지만, 스트레스가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건 누가 처방해준 진통제 같았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도 소월길을 몇 바퀴나 돌았다.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를 달릴 때도 마냥 좋았다. “한국에서 지붕을 1년에 몇 번이나 연다고 그걸 사?” 냉소적으로 물어오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컨버터블은 원래 늘 열고 타는 거야. 그러다 비가 오면 닫지. 직사광선이 너무 뜨거우면 닫고, 눈이 너무 많이 와도 닫고. 그런 거야. 지붕을 여는 게 기본인 사람들이 타는 거야, 컨버터블은.”

미니 컨버터블에는 다른 차에는 없는 즐거움이 있었다. 사이즈가 작은 차는 제한된 차체에 공간을 최대한 넓혀야 하니 프런트 오버행을 짧게 만들 수밖에 없다. 프런트 오버행은 앞 범퍼 끝과 바퀴 사이의 거리다. 자동차의 실내 공간은 곧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의 거리가 결정하는 거니까, 바퀴를 차체 바깥으로 최대한 밀어낼수록 실내 공간이 넓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앞바퀴가 차체 끝까지 밀려나고, 운전석에 앉아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그 순간 즉각적으로 자동차의 앞코가 같이 회전하는 것을 눈과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내 마음같이 움직인다’ 말할 수 있는 경쾌한 운전 감각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4년 동행한 ‘미니 쿠퍼 S 컨버터블’ 아기 위해 ‘폭스바겐 골프’로 갈아타

‘뚜껑 열리는 즐거움’은 포기했지만…온가족 편안한 이동, 또다른 만족감

공간을 최대한 넓게 디자인해야 하니 A필러, 즉 앞유리와 옆유리 사이의 프레임 각도도 직각에 가깝게 세워질 수밖에 없다. 요즘 유행대로 공기역학에 신경을 좀 쓰자면 최대한 눕혀서 날렵하게 디자인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미니의 A필러는 (좀 과장하면) 여전히 수직에 가깝게 서 있다. 옛날 자동차 사진에서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 덕에 조금 더 클래식한 모양새를 65년간 유지하고 있다. 이 형태 그대로 지붕을 열면 그야말로 새로운 드라마가 펼쳐진다.

지붕을 열고 시선을 잠깐만 올리면 바로 하늘을 볼 수 있다. 시속 40㎞ 정도만 달려도 가슴이 뻥 뚫리는 바람을 ‘펄럭펄럭’ 맞을 수 있다. 그대로 남산 소월길을 달릴 땐 계절의 변화가 그대로 치고 들어왔다. 비 내린 다음 날은 물기를 잔뜩 머금은 나무와 흙냄새가, 어디선가 라일락이 피기 시작할 땐 그 향기가, 가을에는 가을을, 봄에는 봄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바로 미니 컨버터블의 운전석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살 수 있는 모든 컨버터블 모델 중 미니만큼의 개방감을 느낄 수 있는 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육아는 피할 수 없었다. 아이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있었고 공간의 한계는 명확했다.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카시트를 사서 미니 컨버터블 뒷좌석에 싣고 버틴 세월이 11개월 정도 됐다. 그 작은 트렁크에도 유아차를 실을 수 있었지만 좀 번거로웠다. 불편하고 귀찮기도 했다. 그래서 외출이 줄었다. 자동차는 이동수단인데. 아이와 다 같이 움직일 수 없다면 아무리 즐거워도 본질을 벗어나 유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두 대를 갖는 것도 무리. 자동차가 두 대면 주차장에도 두 대를 세울 수 있어야 했다. 아파트로 이사 하거나 두 대를 세울 수 있는 집으로 옮겨야 했는데 둘 다 너무 비쌌다. 서울에서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라는 건 가끔 거대한 벽 같았다. 이제 포기를 배울 시간. 우리 부부는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폭스바겐 골프는 그렇게 선택한 대안이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또 하나의 차. 함께한 지 이제 2주 정도 됐는데 이미 후회 없이 행복해졌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의 준중형 해치백이지만 트렁크에는 유아차가 가로, 세로로 아무렇게나 실렸다. 그런 채 여행용 트렁크를 실어도 공간이 남았다. 미니 컨버터블을 탈 때 장착은 가능했지만 회전은 불가능했던 카시트는 이제 뒷좌석에서 자유자재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경기도 외곽으로 나들이 갈 때도 그저 안정적이니 자꾸만 주말 나들이를 계획하게 된다. 아들은 주말마다 자연과 가까워질 수 있다. 지붕이 열리는 작은 차를 타고 때론 한적하게, 가끔은 매콤하게 달리던 신혼부부도 이렇게 조금 성장하는 걸까?

폭스바겐 골프는 ‘해치백의 교과서’라는 별명으로 50년을 이어온 또 하나의 아이콘이다. 그동안 쌓인 노하우와 아름다움이 선과 면마다 담백하게 녹아 있다. 어느 곳 하나 화려하거나 넘치는 세부가 없지만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뛰어났다. 그 자체로 완결돼 있다. 원하는 만큼 움직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주행 거리를 달릴 줄 안다. 폭스바겐이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까지 단련해 온 TDI 엔진과 DSG 미션의 조합이 리터당 20㎞를 훌쩍 넘기는 연비를 달성해 낸다. 가끔은 주유소에 마지막으로 갔던 게 언제였는지를 잊는다. 어떤 장거리를 달려도 마음이 놓인다. 압도적인 실용성과 역사를 가진 모델인 셈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차를 바꾼다고 하시길래 당연히 국산 SUV로 가실 줄 알았어요.”

폭스바겐 골프와 함께하는 일상을 맞이한 후에 느끼는 만족감과는 관계없이, 이런 의견도 참 많이 들었다. 누가 뭐래도 지금은 SUV 시대니까. 현대 투싼이나 기아 스포티지, 현대 싼타페나 기아 쏘렌토야말로 한국의 거의 모든 라이프스타일을 포괄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넓은 공간과 안정적인 승차감에 화려하고 실용적인 옵션으로 가득한 그 세계를 외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차에는 있는 것이 저 차에는 없고, 저 차가 좋다는 걸 잘 알면서도 어쩐지 다른 쪽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하게 되는 것이 자동차일 것이다. 무척 합리적인 듯하지만 실은 감정적일 수밖에 없고, 결국은 마음에 쏙 드는 한 끗이 구매를 결정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번 선택은 그 한 끗이었다. 65년 헤리티지에서 50년 전통으로의 변화. 아이콘에서 아이콘으로의 선택. 결국은 취향이 깊이 관여했다. 게다가 폭스바겐이 만드는 내연기관 골프는 이번 세대로 막을 내릴 예정이다. 시대를 상징하는 마지막 걸작을 소유하는 애틋함과 즐거움도 함께인 셈이다.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 6000㎞ 정도를 탄 브랜드 인증 중고차를 3000만원대 초반에 구했다. 요즘 현대차·기아에서 비슷한 크기의 세단이나 SUV를 사려고 해도 그 정도, 혹은 4000만원 이상을 써야 한다. 아무리 편안하고 대중적이라도 선뜻 쓸 수 있는 규모의 액수는 아니었다.

일상의 동반자이자 즐거움,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수단이자 새로운 목표…. 삶이 새로워질 때마다 자동차도 새로워졌다. 우리 가족의 두 번째 자동차는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다줄 수 있을까. 아이는 이 차에서 카시트를 졸업하고 뒷좌석과 조수석을 두루 경험하며 어떤 아름다움과 만날 수 있을까. 아내와 나는 또 얼마나 열심히 살다가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해 지붕을 열 수 있는 작은 친구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몇 년이 지난 후 폭스바겐 골프와 헤어질 때도 애틋하겠지. 자동차와 함께, 하나의 숙제를 해결하고 또 하나의 목표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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