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포기하면, 전차 장갑 누가 만드나” K-2 전차의 숨은 공로자 [박수찬의 軍]

2025-07-11

폴란드와 사상 최대 규모의 수출 계약을 맺은 국산 K-2 전차는 강력한 화력과 공격력, 방어력을 모두 갖춘 무기로 평가받는다. 성능으로는 독일산 레오파르트2 전차를 앞선다.

K-2 전차는 현대로템이 생산·납품하지만, 핵심 장비는 다른 업체들이 제작한다. 현대로템은 경남 창원 공장에서 체계통합을 한다. 현대위아(120㎜ 주포), HD현대인프라코어(엔진)를 포함한 대기업들이 구성품을 만든다.

전차의 방어력을 결정하는 장갑은 한 중소기업이 만든다. 그 기업의 이름은 삼양컴택.

1962년에 설립된 삼양컴택은 지상 장비 방호제품과 개인방호제품 등을 생산하고 있는 방위산업계의 숨은 강자다. 2009년부터는 K-2 전차의 방탄 장갑을 현대로템에 독점 공급하고 있다.

강철보다 강도가 높고 무게는 가벼운 삼양컴택의 방탄 세라믹은 K-2 전차에 세계 최고 수준의 방어력을 제공했다. 폴란드에 K-2 전차를 공급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삼양컴택 김종일(71) 대표는 지난 8일 열린 제1회 방위산업의 날 기념식에서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서훈에 앞서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기자와 만난 김 대표는 “방탄용 세라믹을 만드는 업체가 별로 없다보니 어려운 일을 많이 해왔다”며 전차 장갑 개발 이야기를 들려줬다.

◆미국도 감췄던 전차 장갑 국산화

전차에 탑재하는 장갑재는 공간과 중량의 제약 속에서 방호력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도 매우 엄격하다.

한국군 K-1 전차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미국 기업이 설계하고 한국에서 생산했지만, 방탄 장갑은 미국에서 전량 공급받았다. 미국 측은 한국인들이 보지 못하도록 엄격한 보안 조치를 적용했는데,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제되지 않을 정도로 장갑 기술 보호에 철저하다.

전차 핵심 기술 국산화가 낮았던 2000년대 중반 국방과학연구소(ADD)가 K-2 전차 개발을 진행한 것은 전차 관련 핵심 기술인 방탄 장갑의 국산화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

김 대표는 1978년 국방부에서 5년간 근무한 뒤 1983년부터 현재까지 삼양그룹에서 기획 및 인수 등을 담당했다. 국방부에선 전차 사업을 맡았다. 전차와 장갑에 대한 인식도 이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방탄 장갑을 만들지 않고 전차 조립만 하면, 다른 사람이 만든 만두소를 사서 만두를 빚는 격”이라며 “핵심기술 발전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K-2 전차에 적용되는 장갑은 복합장갑인 한국형 특수장갑판(KSAP)으로, 장갑용 판재 사이에 세라믹 등을 넣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KSAP의 방호력은 방탄 세라믹이 핵심이다.

방탄 세라믹은 규소와 탄소로 이뤄진 탄화규소(SIC)가 원료다.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할 정도로 높은 강도를 갖고 있어 방탄복 제작 등에 쓰인다.

탄화규소에 2200도의 열과 150t의 압력을 가하고 공업용 다이아몬드로 가공하면 정육각형 모양의 방탄 세라믹 타일이 만들어진다. A4용지 한 묶음(5㎝)보다 3㎝ 정도 두껍다.

강철보다 2.5배 가볍고 강도는 3배 더 강하므로 공업용 다이아몬드로 특수 가공을 해야 한다.

이같은 기술을 확보하기까지 삼양컴택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방탄 세라믹은 타일 전체의 밀도가 균일해야 한다. 아주 작은 차이만으로도 포탄이 파고들 위험이 있고, 이는 전차의 방호력이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

문제는 세라믹 두께가 두꺼울수록 밀도를 균일하게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성경책보다 두꺼운 세라믹 타일의 밀도를 완벽하게 맞추려면, 압력과 가열 온도 및 시간 등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약간의 차이만으로도 강도와 밀도는 크게 달라진다.

이를 위해 삼양컴택 연구원들은 수천번의 시험을 거듭, 최적의 방법을 확인했다.

2009년 장갑 관련 기술을 삼양컴택에서 이전받은 튀르키예 로켓산이 현재까지 자체 생산을 하지 못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기술 개발 이후에도 우여곡절은 지속됐다. 파워팩 문제 등으로 K-2 전차 양산이 한때 중단되면서 삼양컴택 장갑 생산라인도 1년 가까이 멈췄다.

이로 인해 상당수 직원이 공장을 떠났다. 김 대표는 “국가적 손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양산 재개 결정 이후 김 대표는 공장을 떠난 사람 중 3분의 1을 설득해서 복귀시켰지만, 다른 사람들은 데려오지 못했다. 인력을 새로 채용해서 교육하는 등의 작업을 거쳐야 했다.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김 대표는 K-2 전차 장갑 사업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는 “그냥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런데 ‘우리가 포기하면 전차 장갑은 누가 만드나’ 싶었다. 만들 곳이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끝까지 놓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폴란드 수출 성공의 숨은 공로자

국내에서 많은 고비를 넘기며 장갑 제작 기술을 확보한 삼양컴택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또다른 기회였다. K-2 전차가 폴란드에 대량으로 수출되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K-2 전차 폴란드 수출 가능성을 처음 인지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였던 2022년 3월. 김 대표는 “강은호 당시 방위사업청장과 만난 자리에서 강 청장에게 폴란드가 K-2 전차에 호의적이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얼마 안가 계약이 이뤄지더라”고 회상했다.

폴란드와 1차 계약을 통해 현대로템은 K-2GF 전차 180대를 납품하게 됐다. 단기간에 많은 물량을 납품하므로 연간 생산량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당시 삼양컴택은 경기 광주 공장에서 연간 20대 분량의 K-2 전차 장갑재를 생산했다. 그런데 폴란드 수출 계약 직후 현대로템은 장갑재 생산량을 5배로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맞추려면 500억 원이 필요했다. 중견기업으로선 큰 부담이었다.

생산량을 대폭 늘리려면 공장을 확장해야 했다. 한강 수계에 속해 있던 경기 광주 공장은 환경 문제 등으로 증축이 쉽지 않았다.

새로운 공장 부지를 찾던 김 대표의 눈에 들어온 곳은 경남 구미시 구미 공단. 방탄 세라믹을 만들려면 한 달에 수억원의 전기료를 낼 정도로 전기를 많이 써야 한다. 구미 공단은 변전소를 갖추고 있어서 안정적인 전기공급이 가능했다.

공장 문제를 해결하니 인력 유지가 난제였다. 공장을 수백㎞ 떨어진 곳으로 옮기면서 퇴사하겠다는 직원이 적지 않았다. 구미에서 채용한 인력도 짧은 기간만 근무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공장 근처에 기숙사를 마련해 세끼 식사를 제공했고, 이주한 직원들에게는 매달 20만원씩 교통비를 줬다. 직원들을 위해 월급과 별도로 매달 30만~50만원의 적금을 제공했다. 그 결과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 520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으로 구미 공장은 1년 만에 K-2 전차 100대 분량의 장갑재를 만드는 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현대로템이 폴란드 1차 수출 계약 물량(180대)을 기한 내 신속하게 납품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폴란드가 최근 K-2 전차 2차 계약 체결을 확정하면서 회사도 관련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2차 계약에선 폴란드 요구사항이 반영된 K-2PL 전차 60여대가 포함되어 있다.

K-2PL은 K-2 전차보다 방호력이 향상된 기종이다. 따라서 방탄 세라믹 타일도 더욱 두꺼워진다. 기존보다 더 많은 세라믹을 만들어야 한다.

김 대표는 “추가로 설비에 더 투자해야 한다”며 “공장 공간을 정리해서 라인 1개를 더 설치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삼양컴택은 K-2 전차의 뒤를 이을 차세대 전차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현대로템 등이 추진하는 차세대 전차는 K-2보다 훨씬 우수한 방호력을 지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삼양컴택은 강도가 더 높은 세라믹을 이용한 장갑재 등을 연구하고 있다.

김 대표는 “자체적으로 소재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세라믹 분말 등에서부터 개발을 계속 진행하고 있어서 이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누구와 경쟁해도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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