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국난 극복 상징, 하얀 맨발…박세리 “다시 와도 양말 벗는다”

2025-01-20

시대탐구 1990년대

1998년 US여자오픈 연장 18번홀. 내 드라이브 티샷이 약간 감긴 듯했다. 필드에 닿은 공은 통통 튀더니 페어웨이 왼쪽 연못으로 넘어갔다.

필드에서 내려다보니 공은 연못가 수풀 사이에 놓여 있었다. 물에 안 빠진 거다. 아직 기회는 있다. 나는 주저없이 양말을 벗었다.

연못에 들어가 다시 확인한 공은 엉킨 잔디 틈 사이 아슬아슬 걸쳐진 채 바닥에서 붕 떠 있었다. 물은 생각보다 깊어 종아리가 절반 넘게 잠겼다. 연못 경사면은 가파르고 높아 공을 올릴 필드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 공을 포기하면 벌타를 받지만 불리하나마 경기를 이어갈 순 있다. 하지만 잘못 건드려 물에 빠뜨리면 경기는 여기서 끝난다. 현실적으로 후자의 가능성이 압도적이다….

그때 마음속에선 ‘공을 물에 빠뜨려도, 그래서 져도 상관없다. 하지만 지금 안 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치자.

이내 자세를 고쳐 잡고 골프채를 짧게 쥔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환호를 보내던 갤러리들은 일순간 고요해졌다.

딱.

스윗스폿(sweet spot)의 전율이 온몸에 찌릿하게 흘렀다. 그림 같은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간 공이 필드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잘 맞았구나’ 확인한 뒤에야, 갤러리의 엄청난 환호와 박수갈채가 들렸다.

이 광경을 과자를 먹으며 느긋하게 지켜보던 동갑내기 경쟁자 제니 추아시리폰(20·미국)은 다음 샷에서 크게 흔들렸다. 박빙이나마 조금씩 앞서가던 그가 보기를 범했고 나와 또다시 동점이 됐다.

연못샷이 만들어준 재연장전. 이제부턴 누구든 먼저 점수를 내면 승자가 되는 서든데스 방식이다. 연장 20번째 홀로 걸어가면서 “이번에 끝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의 6m짜리 버디 퍼트가 홀컵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LPGA 투어 역사상 가장 긴 혈투(92홀)가 끝났다. 나의 우승이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