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기업들이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디자인 전략 또한 빠르게 고도화하고 있다. 중국은 디자인 ‘투트랙 전략’을 활용해 내수 시장과 해외 진출을 동시에 공략하겠다는 구상이다.
19일 디자인 업계에 따르면 과거 제조 기술에 집중하던 중국이 최근에는 제품 설계 단계부터 기술과 디자인을 결합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저임금과 대규모 노동력을 바탕으로 단순 조립·가공 중심의 세계 최대 공급망을 구축했던 기존과 달라진 모습이다. 단순한 외관 디자인에서 벗어나 다양한 디자인 분야를 통합한 설계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 기업들이 지금까지의 ‘중국산’에 대한 이미지를 버리고 많은 신기술을 개발한 혁신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해법으로 디자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국내 디자인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브랜드들이 최근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를 휩쓸고 있는 것도 결국 디자인이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수단으로 봤기 때문”이라며 “일부 중국 지방정부에서는 글로벌 디자인상을 수상한 기업에 지원금을 주는 등 중국 기업은 물론 중국 정부도 중국 제품에 대한 이미지 개선을 위해 디자인 고도화를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중국 기업들은 브랜드 콘셉트나 전략 설계 등 글로벌 시장에서 먹힐 고부가가치 디자인은 한국이나 유럽 등 해외 디자인 기업에 의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생산성과 완성도를 확보하는 동시에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 제고도 꾀한다는 포석이다. 한 디자인하우스 대표는 “중국에서는 한국 디자인을 세련되고 깔끔하다고 평가한다”며 “화웨이·샤오미 등 중국 기업들이 한국 디자인 업체에 협업을 제안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 내에서는 다른 디자인 전략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 중국 톱3 가전 회사인 마이디어와 샤오미 같은 중국 대기업들은 중국 내수 시장과 글로벌 시장에서 서로 다른 디자인 전략을 취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미니멀리즘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지만 중국 내수 시장에서는 여전히 크고 화려한 디자인이 선호되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의 한 디자이너는 “중국 기업들도 글로벌 트렌드를 기반으로 하는 디자인에 집중하고 싶어하지만 결국 선택하는 것은 중국 시장에서 통하는 디자인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특히 미국·유럽 등 주요국의 제재로 글로벌 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막대한 규모의 내수 시장을 외면할 수 없는 실정이다.
다만 최근 중국 기업들도 인하우스 디자인팀의 역량을 확대하며 외부 의존도를 줄이는 추세다. 초기에는 외부 디자인 회사에 프로젝트를 맡기다 일정 수준의 노하우가 축적되면 회사 내부의 디자인팀을 강화하는 구조다. 중국 기업들은 인하우스 디자인팀을 강화하며 한국 디자이너들이나 유럽 디자이너들을 핵심 직책으로 영입하고 있다. 한 디자인하우스 대표는 “과거에는 정보기술(IT) 제품 디자인을 외부에 맡겼지만 지금은 대부분 인하우스로 전환되고 있다”며 “글로벌 디자이너들로부터 디자인 역량을 습득하고, 여기에 해외에서 디자인을 경험한 중국인들이 많아지면서 인하우스 디자인팀 역량이 급격하게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중국 기업의 디자인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 디자인 기업들도 향후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디자인 기업들은 단순한 외관 설계보다 기획 전략 중심의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지 10년이 넘은 강현준 유투디자인 대표는 “중국 디자인 기업과 가격 경쟁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기획·브랜딩 등 고부가가치 분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박성제 BKID 팀장도 “요즘은 제품의 형태보다 사용자경험(UX), 브랜드 전략을 함께 설계하는 ‘토털 솔루션’ 프로젝트가 주를 이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