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작일지] 영화 <반구대 사피엔스>, 다큐멘터리 <반구대별곡> “⑧ 우리는 사자다”

2024-07-05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항상 내키지 않는다. 누군가는 어느 한 장면을 한 번 더 보고 싶어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더 많이 기억하기 위해서 연속으로 보기도 한다. 예전에 극장 좌석과 출입을 통제하지 않던 시절에는 영화가 끝난 뒤 커튼 뒤에 슬쩍 서 있다가 방금 본 영화를 두 번씩, 세 번씩 이어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청소원이나 관리인도 대체로 못 본 체해 줬다. 뭐랄까, 나의 경우는 이미 본 장면들을 꾹꾹 참는 게 힘든 것 같다. 빠르게 감기나 건너뛰기가 쉬운 지금도 꼭 봐야 하는 영화는 보기에 괴로워도 영화를 만든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편집의 호흡대로 따라가는데, 그냥 뛰어넘어도 될 것을 다 보고 있으니 그 고역은 물리적 통증처럼 불편하다. 재밌게 본 영화라도 거의 예외가 없다.

그럼에도 <칼>(1995, 쉬커)은 비디오테이프 덮개를 볼 때마다 봤는지 안 봤는지 헷갈려서 열 번쯤 봤고, <영화 카메라를 든 남자>(1929, 지가 베르토프)는 데쿠파주를 하느라 전체에서 조각으로, 조각에서 다시 전체로 다섯 번 봤으며, <엑스 마키나>(2015, 알렉스 갈랜드)는 인공지능 관련 학술논문으로 세 번 봤다(학진등재지에 게재되었다). 열네 번을 봤어도 또다시 보고 싶은 영화는 <트로이>(2004, 볼프강 페터젠)이다. 도산대로의 어느 극장에서 여섯 번, 전 세계에서 2천 장만 찍었다는 한정판 DVD로 일곱 번, IPTV에서 한 번 봤다.

가장 마음에 드는 두 장면은 아킬레스가 소수정예 전사들과 트로이 해변에 가장 먼저 도착해 방패로 대열을 이루며 척척 한 걸음씩 전진하는 장면과, 망원 렌즈로 촬영한 아킬레스와 헥토르의 결투 장면에서 아킬레스가 하나, 둘, 셋, 회오리 칼춤을 추며 헥토르의 심장에 대검을 찔러넣는 장면이다. 생각만 해도 들숨이 목구멍을 틀어막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해변에 도착하기 직전 잔혹하기 짝이 없지만 전우애는 걸쭉한 피보다 더 진하고 전사의 자존감은 ‘오함마’보다 더 묵직한 전사들에게 아킬레스가 내뱉는 대사는 멋지고, 멋지며, 멋지다.

Myrmidons! My brothers of the sword! I would rather fight beside you than any army of thousands! Let no man forget how menacing we are, we are lions! Do you know what's there, waiting beyond that beach? Immortality! Take it! It's yours!

위 아 라이언스! 이 부분이 너무 좋다. 소수정예로 이 척박한 도시에서 영화를 찍겠다고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내 스태프들에게 그래서 나는 위 아 라이언스, 라는 말을 자주 한다. 능력이 있어도 배고파서, 영화가 너무 좋지만 배고파서, 영화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배고파서, 그래서 참 많은 영화인이 영화판을 떠났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하지만 우리는 치열한 영화판에서 어쨌든 여전히 영화판을 떠나지 않고 살아남아 이 순간에도 영화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 없는 돈에 싸구려 대패삼겹살을 먹으면서도 영화 이야기로 와하하 웃음을 터뜨리고, 당시엔 죽을 듯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서라운드로 영웅담처럼 쏟아낸다.

2003년부터 지난 2월까지 학교에 있으면서 세 가지 면에서 힘들었다. 첫째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거나 해마다 반복되는 교과과정에 안주함으로써 영화적으로 도태되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잡무가 너무 많았고, 내가 선생인지 영화인인지 단순노동 기계인지 자괴감이 드는 날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며, 셋째는, 교수사회의 구질구질한 정치와 잔인한 기만에 영혼이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벌이는 없어졌어도 감독의 자리가 행복하다.

올해 초 의지가 약해지는, 달콤하면서도 올가미가 걸린 제안들이 있었지만 두 번 다시 선생질과 딴짓을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정신이 말짱한 때까지는 영화만 만들고 영화만 쓰고 영화만 볼 거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스태프들이 여기에 내려와 있다 보니 제작비가 두 배, 세 배 늘어나고, 부담을 줄인다고 집에서 식사를 종종 해결해도 차이가 없고, 일주일에 5일간 40시간 이내로만 일하자고 해놓고 평균 수면시간이 네댓 시간도 안 되면서 쪽잠을 자가며 일주일 내내 일하고. 급여 명목으로 나가는 인건비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고. 본인들도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을 텐데 연출이 제일 힘들다며 세심하게 배려해 주고. 그래서 숨 좀 돌리면서 용돈이라도 좀 챙기라고 강의를 하나 맡았다. 내심 기대가 큰 교육 과정이었는데 기대가 너무 컸었던 모양인지 수업이 끝날 때마다 많은 이유로 지쳤다.

우리는 내일도 수업에 나가야 하고, 시나리오 작업에, 촬영에, 편집으로 또 맹렬하게 시간과 자신과 작품과 싸워야 한다.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다큐멘터리가 한 편 더 늘어나 주말까지 반납한 지 벌써 두 달째다. 촬영감독은 극영화 촬영으로 잠시 울산을 떠나 있는데 장마 때문에 일정이 연장되자 울산 일정을 맞추기 위해 대체인력을 구해놓고 바로 내려오기로 했다. 이어서 들어가는 작품도 다른 촬영감독에게 넘겼다. 벌어도 거기에서 더 벌고, 크레딧도 확실하게 보장돼 있는데 그걸 내려놓고 온다. 그저 고맙다.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영화판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의 영화 작업만 얘기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넋두리하고 한탄했다. 이들도 울산에서 지내는 동안 지난 11년간 내가 겪었던 것들과 오늘의 내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젠장, 그동안 나 참 외로웠구나. 알아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정말 외롭고 힘들었구나. 그런데 이젠 내 곁에 동료가 있구나. 혼자 아프고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Filmmakers! My brothers of the film! I would rather make a film with you than any people of thousands! Let no man forget how intensive we are, WE ARE LIONS! Do you know what’s there, waiting beyond that rocky mountain? Pride and credits! Take it! It’s ours!

난 더 이상 선생이 아니다. 스태프들의 두달치 밥값이자 맥줏값이고 안줏값이다. 다시 거세게 몰아쳐 보자. 나는 사자다.

(다음 호: 이번 주 예정했던 “딴따라에서 신진 귀족으로”는 9회에 올립니다.)

이민정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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