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政爭)이 필요한 때는 그것으로 얻어지는 국익이나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윤택해지느냐가 달려 있을 때다. 정부의 행정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바뀌고, 기업이나 생산 활동에 얼마나 기여할지 방법을 찾는 정쟁이라면 오히려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대통령이 탄핵된 국가 비상사태일 지언정 국회는 일을 해야한다. 그래야 국가가 살고, 국민경제가 돌아간다. 국민을 대표해 일하라고 뽑아 놓은 국회가 제 할일을 팽개치면 국민 삶은 더 피폐하고 고달파진다. 더구나 어느쪽 할 것 없이 '민생'을 첫 손가락에 꼽고 있지 않은가.
11차 국가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확정을 위한 마지막 관문인 국회 보고 절차가 해를 넘겨 오리무중이다. 2038년까지 국가 전원(電源)별 비중에서 원자력발전 비중을 늘려잡았던 여당은 그 기조를 유지하라고 버티고, 야당은 대통령이 탄핵된 마당에 그 기조를 뒤집어 원전 비중을 줄이라고 맞서며 전기본은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기업이나 국민들은 실상, 전기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에 그닥 관심이 없다. 물론, 기후변화 등 지구적 이슈를 등한시 하자는 것이 아니다. 탄소배출 저감과 친환경 발전원 확충은 미래를 위한 대계로 그것대로 마련해 가면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11차 전기본 확정을 놓고 친원전과 반원전으로 갈려 진영대결을 해서는 득될게 하나도 없다. 시간만 허비하다보면 12차 전기본을 짜기 시작해야할 시기까지 11차 전기본이 확정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전기본이 확정되지 못하면 공·민 발전업계 공히 아무런 계획이나 예측없이 현재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당연히 설비투자나 신규 확충 등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당연히 일자리와 연결돼 있는 결정들이다.
늦었지만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조정안을 들고 나왔다니, 여야도 전향적인 자세로 협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13년뒤 전력이 어디서 나올지 현재의 잣대로 싸우는 양상은 이만 거둬야 한다. 적어도 그때까지의 기술 발전과 신기술의 등장까지를 유연하게 놓고 본다면 일단 전기본은 여야 보고를 거쳐 확정한 뒤 조금씩 미세조정해가면 된다. 그리고 다가올 12차 전기본에 그 방향성을 담아 구체성을 더하면 될 일이다. 더이상 미적댄다면 '민생 우선'이란 선언 자체가 우스워진다.
이진호 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