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고는 친일·독재 미화를 중단하라, 불량 한국사교육 시도를 중단하라!”
경북 경산시 문명고등학교 앞에서 19일 ‘문명고 친일·독재 미화, 불량 한국사교과서 채택대응 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경북교육연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북지부 등 20개 단체로 구성됐다.
이날 문명고 정문 앞에는 ‘교과서 선택은 수업권과 교권입니다’ ‘정치개입 중단해 주십시오. 교과서 선택은 학교 교육의 자율성입니다’ 등의 대형펼침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학교 정문 앞에는 차량 여러 대가 주차돼 있어 마치 바리케이드를 친 모양새였다.
이용기 경북혁신교육연구소 공감 소장은 “7년 만에 또다시 이 자리에 섰다. 참담하다”며 “2017년 문명고가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로 선정된 것과 (이번 교과서 채택이) 맥을 같이 한다. 친일·독재를 교묘한 방식으로 미화한 것이 그것”이라고 말했다.
문명고는 전국 일반계고 중 유일하게 한국학력평가원이 펴낸 교과서를 채택했다. 이 교과서는 친일 인사를 두둔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축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이승만 정권에 대해 ‘독재’ 대신 ‘집권연장’으로 표현하는 등 독재 정권을 옹호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 10·19사건 희생자에 대해서는 ‘반란군’으로 서술해 문제 제기를 받자 반란군 표현을 삭제하기도 했다. 문명고는 2017년 박근혜 정부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돼 논란이 된 바 있다.
대책위 관계자는 “문명고가 채택한 교과서는 친일·독재 미화뿐만 아니라 연도, 단체명 등 기본적인 사실관계 오류, 오타 등 338건의 오류가 확인됐다. 현직 역사교사가 지적하는 역사 왜곡, 불량교과서”라며 “일제강점기 강제 수탈을 정당화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부활을 묵인하는 잘못된 역사 교육에 학생을 희생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또 문명고가 교과서 채택 과정에서 재단의 정관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교과서 채택 등을 위한 학교운영위원회 회의 소집은 개최 전 학교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 구성원인 학생·학부모·교직원의 회의 참관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권정훈 대책위 대변인은 “경북도교육청은 문명고 법령 위반을 묵인 또는 방조하고 있다”며 “경북교육청의 이러한 행위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임종식 교육감에게 있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문명고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자 했으나 학교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몸을 밀치는 등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날 저녁부터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문명고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문명고에서는 이날 오후 7시부터 입학설명회가 열린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문명고 학부모 이승민씨(50)는 “(자녀를 문명고에 입학시키면서) 2017년에 있었던 국정교과서 문제로 걱정을 하긴 했으나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한쪽으로 편향된 역사를 배우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