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사로의 정식 데뷔는 나만의 레시피로 만든 마라탕을 고객들에게 선보였을 때입니다. 그렇게 계산하면 아직 경력이 10년도 안 됐으니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 딱 그 정도로 불리는 게 맞지 않을까요.”
22일 서울 송파구 중식당 ‘조광201’에서 만난 ‘만찢남(만화책 찢어서 요리하는 남자)’ 조광효(37) 셰프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다. 지난해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출연 이후 밀려드는 손님들로 두 달 치 예약이 찰 정도로 최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스스로를 ‘스타 셰프’가 아닌 ‘초보 요리사’로 표현했다. 그의 요리 실력은 이미 방송을 통해 검증됐다. 조 셰프는 동파육과 마파두부를 선보이며 쟁쟁한 요리사들을 제치고 최후 15인에 뽑혔다.
최근 조 셰프는 요리책 ‘만찢남의 오타쿠 레시피’에 이어 요리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집 ‘만찢남의 인생 정식’을 연달아 발표했다. 책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가장 좋아하는 만화 ‘요리천하’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요리천하’는 요리에 슬슬 재미를 느끼기 시작할 때 접했던 만화다. 조 셰프는 “레시피를 수집하다가 만화를 통해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주인공이 요리사로 성장하는 과정이 어느 순간 저와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며 “어떤 생각으로 요리를 시작하게 됐는지 과정을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만화방에서 팔던 떡볶이는 그가 요리사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됐다. 자전거 회사에서 디자인을 하다가 커스텀 자전거숍과 레시가드(기능성 소재의 운동용 셔츠) 브랜드를 창업했지만 1년도 못 가서 모두 문을 닫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친구와 중고 책을 수거해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평소 좋아하던 만화방을 열기로 했다. 조 셰프는 “청년창업대출을 받아 인테리어를 하고 나니까 정작 만화책 살 돈이 부족해 떡볶이를 만들어서 팔기로 했다”며 “그렇게 나온 게 ‘비룡떡볶이’”라고 설명했다. 비룡떡볶이는 ‘신중화일미’라는 만화에서 요리사가 손님에게 음식 뚜껑을 열어주는 장면을 떠올려 만든 메뉴로, 판매를 시작하자 아침부터 줄을 서기 시작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자신의 이름 앞 두 글자와 세 들어 있는 건물 201호를 조합해 만든 ‘조광201’은 그가 방송 전부터 운영하던 중식당이다. 만화방에서 떡볶이를 팔아 번 돈으로 시작한 사업이다. 주택가 건물 2층에 간판도 달지 않았지만 오픈 초기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유명 맛집으로 알려졌다. 방송 출연 이후에는 마라탕보다 동파육과 마파두부를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한번도 요리를 배워본 적이 없다는 조 셰프는 모든 요리를 스스로 해석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개발해왔다. 마라탕 역시 그가 10년 전 마라샹궈에 빠져 쓰촨요리를 배우러 중국을 다녀와 내놓은 인생 첫 번째 메뉴다. 조 셰프는 “비룡떡볶이는 사실 요리라기보다 집에서 해 먹는 간식에 가까웠다”며 “필요한 일이라면 스스로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정식으로 요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아이디어의 원천은 여전히 만화책이다. 만화광인 조 셰프는 만화책에서 영감을 받은 수많은 메뉴를 선보였다. 만화책 ‘철냄비 짱!’에 등장한 게살 춘권, ‘맛의 달인’에 등장한 동파육이 대표적이다. 인상 깊게 본 만화 속 요리로 ‘돼지 애저로 만든 탕수육’과 ‘돼지고기를 다져 만든 만두피’ ‘메추리알을 넣은 햄버거’ 등을 꼽은 그는 “‘미스터 초밥왕’을 보고 제철 생선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했다”며 “만화를 통해 자료를 쌓다 보면 언젠가 정식 메뉴로 개발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반복적으로 만화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만화 속에 나온 요리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플레이팅과 매장 분위기 등을 기억해뒀다가 요리에 접목한다”고 덧붙였다.
조 셰프는 만화책뿐 아니라 에세이·소설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독가다. 그는 “꼭 요리와 관련된 책만 읽는 것은 아니고 어떤 책이라도 읽다가 다양한 방식으로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의 특별한 메뉴 개발 방식은 요리사들에게도 관심거리다. 조 셰프는 “함께 일하는 요리사들이 오히려 저보다 경력이 많은 경우도 있지만 메뉴를 짜는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배우러 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조 셰프는 방송 이후 ‘만찢남’ 수식어가 따라붙는 데 대해 부담스럽다는 속내도 전했다. 자칫 재미로 음식을 만들거나 쉽게 생각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어서다. 그는 “요리사로서 평생 ‘만화’라는 꼬리표를 달고 가기는 싫고 메뉴를 내놓을 때마다 ‘어느 만화에서 나온 거냐’는 반응도 유쾌하지만은 않다”면서 “요리를 누구보다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슐랭 가이드’가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맛의 요리를 내놓는 음식점에 부여하는 등급인 ‘빕그루망’에 선정되는 게 최종 목표라는 그는 당분간 메뉴 개발에만 집중할 계획이다. 조 셰프는 “제가 추구하는 것은 레시피 개발인데 방송 덕분에 그동안 동파육과 마파두부만 열심히 만들었던 것 같다”며 “11월부터 요리연구실을 열고 미슐랭 빕그루망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번에는 중식의 기본인 짜장면에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밀가루부터 고기·야채·춘장을 하나하나씩 파보려고 합니다. 저만의 레시피로 만든 짜장면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