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다바시 마을 이야기

탄자니아 북부 아루샤주의 은다바시 지역이 한국과 인연을 맺은 건 15년 전이다.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에서 차로 2시간 반, 자욱한 흙먼지가 날리는 오프로드를 40분 이상 달려야 나타나는 이 작은 지역에 2010년 ‘월드비전 은다바시 지역개발사업장(AP)’이 들어섰다. 전액 한국월드비전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이곳을 통해 현재 3400여 명의 아동이 한국인 후원자와 일대일 결연을 맺고 있다.
은다바시에는 21개의 작은 마을이 있다. 이곳에 약 7만3000명의 주민이 산다. 인구의 75%는 농업과 목축업으로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생활은 녹록지 않다. 농업용수와 식수가 부족해 만성적인 식량난을 겪으며, 주민들은 물을 구하러 다니느라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결국 건강이 악화하고 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해 소득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된다.
월드비전은 한국의 개인 후원자, 기업, 종교기관과 함께 이 같은 악순환을 끊기 위한 사업을 펼쳐왔다. ▶식수·위생 ▶보건·영양 ▶소득 증대 ▶아동보호 ▶교육지원 등 지역 자립역량강화 사업으로 마을의 풍경은 점점 바뀌고 있다. 지난달 9일(현지시간)부터 8박 9일간 진행된 월드비전 후원자 방문 프로그램 ‘비전로드’에 동행해 달라진 은다바시의 모습을 둘러봤다.
7만 리터 물탱크가 들어서다
“마을 입구의 작은 연못에서 물을 길어다 썼어요. 더러운 물인 줄 알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마하하 마을에서 만난 주민 세뇨리타가 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마하하 마을에서 식수를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오염된 물을 마신 주민들은 자주 배가 아팠다. 출산을 앞둔 산모들은 보건소에 가져갈 깨끗한 물을 직접 찾아다녀야 했다.
지난해 4월 마을에 대공사가 시작됐다. 월드비전은 ‘피니시 더 잡 포 워터(Finish the Job for Water)’ 프로젝트를 통해 한 번에 7만5000리터까지 저장할 수 있는 물탱크와 태양광 펌프, 파이프라인을 설치했다. 정부가 행정 절차와 일부 비용을 지원했고, 마을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공사에 참여해 일손을 거들었다. 8달 후 보건소·학교 등 마을 곳곳에 수도가 설치됐고 주민들은 시간당 8000리터 넘는 깨끗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가격은 20리터에 30실링(약 16원)으로 누구나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인근 마을 주민까지 약 2000명이 이 물을 사용한다.
마하하 마을 주민들은 한국에서 온 후원자들을 춤과 노래 공연으로 환영했다. 마을장 사무엘씨는 “수도 시설 덕분에 주민들 생활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며 “지금은 위생과 유지·보수 교육을 받은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직접 시설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를 떠나지 않게 된 아이들
옆 마을 아얄라리오에서는 지난해부터 2000㎡(약 612평) 규모의 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있다. 월드비전과 미국국제개발처(USAID)가 협력해 물탱크와 관개수로, 비료, 씨앗 등을 지원하면서 주민들은 양배추와 양파, 감자, 가지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됐다. 농업용수 인프라가 잘 갖춰져 매년 6~10월 찾아오는 건기에도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월드비전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모종 심기, 접붙이기 같은 현대식 농법 교육도 실시했다. 데니스 레오 퀘카 월드비전 은다바시AP 매니저는 “농업 생산성이 크게 올라 콩과 옥수수만 먹던 주민들이 다양한 채소를 섭취할 수 있게 됐다”면서 “먹고 남은 채소는 시장에 판매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은다바시 초등학교는 탄자니아 정부의 표창을 받는 등 전국에서 손꼽히는 ‘위생·안전 분야 우수학교’가 됐다. 급식을 위한 주방과 도서관, 컴퓨터실, 교무실, 깨끗한 화장실이 설치됐다. 화장실은 특히 여자아이들의 출석률을 크게 높였다. 현지 학교 관계자는 “이전에는 생리대를 처리할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월경을 하는 여학생들은 자주 결석을 했다”며 “시설을 확충하고, 아동권리 교육을 실시하면서 학생들의 출석률은 98%까지 높아졌다”고 말했다.
월드비전 은다바시 사업장은 2034년까지 운영된다. 퀘카 매니저는 “남은 기간에는 인프라 확충과 함께 현재 40%에 달하는 영양실조 아동 비율을 5% 이하로 낮추고, 조혼 문화를 개선하는 등 아동보호를 위한 인식 개선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은 “월드비전의 ‘후원을 멈추는 후원’ 슬로건처럼 외부 지원이 끝난 뒤에도 지역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