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와 가스라이팅

2024-09-02

안성준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인공지능학과/논설위원

얼마 전 인터넷 서점에서 신간 도서가 출간되었다는 푸시 업(push-up) 메시지를 받았다. 평소에도 종종 오는 메시지라 여느 때와 같이 그냥 넘기려는 순간 책의 제목이 필자의 관심을 확 끌어당겼다.

그 책의 제목은 바로 ‘세뇌의 역사’였다. 책의 작가는 조엘 딤데일(Dimsdale, Jole E.)이라는 미국의 저명한 정신의학자라고 하는데 책 표지에 쓰여있는 원래 제목은 ‘Dark Persuasion(어둠의 설득)’으로, 아마도 그 내용이 세뇌의 부정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거라 미루어 짐작된다. 그럼 이 ‘세뇌(洗腦, Brainwashing)’라는 단어는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진 단어일까? 세뇌란 ‘개인의 사상이나 가치관 등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게 하거나 새로운 사상·주의·교리 등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체계적인 노력’이라고 한다. 사전에 정의되어 있는 의미 그대로 놓고 봤을 때 세뇌를 절대적으로 안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여러 역사적인 사건들과 뉴스를 통해 접하는 소식 때문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이긴 하다.

최근 들어 세뇌하고 비슷한 개념으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단어가 있다. 시사 상식 사전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가정, 학교, 연인 등 주로 밀접하거나 친밀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수평적이기보다 비대칭적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이루어지게 된다.’고 요약돼 있다. 가스라이팅은 얼핏 세뇌와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의미에서도 드러나듯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세뇌와는 차이가 있다.

의도와 목적의 측면에서 보면 세뇌는 주로 정치적, 이념적 목적으로 대규모로 이루어지며, 특정 신념을 강제로 주입하는 것이 목적인 반면, 가스라이팅은 개인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며 상대방을 조작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차이가 있다.

방법과 대상의 측면에서 보자면 세뇌는 강압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반면 가스라이팅은 주로 심리적 조작과 왜곡을 통해 이루어지며 대상의 관점에서 보면 세뇌는 다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만, 가스라이팅은 주로 개인이나 소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등 여러 측면에서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현재를 포함해 우리가 배워왔던 긴 역사의 여러 장면들에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세뇌와 많은 가스라이팅이 있었다. 최근 들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앞서 언급한 특성들로 인해 가스라이팅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그 가스라이팅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중요한 일을 앞둔 자신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 자기 최면을 걸듯이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자녀나 아끼는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믿음과 응원을 보낸다.

여기까지는 좋다. 다만 딱 거기까지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이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랑이 과해 집착이 돼 교육이나 충고라는 미명 아래 과도한 간섭과 강요,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 주변에 사랑과 가스라이팅의 경계선에 서 있는 관계가 너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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