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촌은 이미 ‘멀티제너레이션’ 시대

2024-10-02

요즘 ‘멀티제너레이션(multi-generation·다세대)’이란 용어가 세간에 돌고 있다. 2050년에는 최대 10세대가 공존하는 멀티제너레이션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트렌드와 비즈니스 전략분야의 권위자로 알려진 마우로 기옌 교수는 최근 저서 ‘멀티제너레이션, 대전환의 시작’에서 이같이 전망했다.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지금까지는 3세대가 한 시대를 살아가는 구조였지만, 앞으로는 기대수명 증가와 신체적·정신적 건강 향상에 따라 나이와 세대 구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즉 멀티제너레이션 시대는 베이비붐세대(1955∼1963년생)부터 알파세대(201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까지 각각의 연령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함께 배우고 일하는 시대이며, 이런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세대를 뛰어넘어 살아가는 ‘퍼레니얼(perennial·다년생식물)’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권유하는 점이 흥미롭다.

우리 농촌은 이미 멀티제너레이션 시대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농촌 마을에는 적어도 8세대, 즉 10대에서 80대가 함께 일하고 배우며 살고 있다고 판단된다. 예컨대 농사에 은퇴란 없다며 농고에 재학 중인 손자와 함께 스마트농업을 익혀가는 80대 경영주, 기계화영농단 시절부터 마을의 농기계 작업을 도맡아 하면서 한국농수산대학교 졸업생을 인턴사원으로 영입한 50대 농업법인 대표, 직장을 명예퇴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텃밭을 가꾸며 마을 어르신들과 인생을 즐기는 60대 귀촌인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한편 농촌의 고령화는 엄중한 현실이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30년 농가인구를 추산한 결과, 은퇴 연령을 75세로 가정하면 앞으로 6년 후 전체 농가 경영주의 32.9%인 34만명이 영농을 그만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뒤를 이을 승계농은 4만4000명으로, 은퇴농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후계 인력이 비관적인 것만도 아니다. 농경연의 2022년 연구에서 청년 중 상당수가 농촌적 삶을 지향(14.7%)하고 농촌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17.8%)으로 조사됐다. 이 연구자는 농촌 진입장벽이 낮을수록 청년들의 거주 의향이 높으므로 ‘영농후계자’와 유사하게 ‘농촌후계자’ 개념을 도입해 정책적으로 지원한다면 더 많은 청년들이 농촌을 찾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농촌에 정착한 후 자연스레 영농에도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들 청년들과 더불어 우리 농촌사회는 활력 있는 멀티제너레이션 시대로 전환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기성세대의 열린 마음이다. 현재 농촌사회의 주축인 기성세대는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과 다르기 때문에 마찰이 생길 수도 있지만 협업의 기회도 만들어질 것이다. 이미 안정적인 지위를 확보한 기성세대가 신세대를 품어주는 아량이 중요하다. 둘째, 세대간의 교류와 소통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상호교류를 통해 자극을 받으려는 욕구를 충족시키며 성장한다. 셋째, 함께 배우며 일하는 자세다. 농촌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베테랑 전업농이 최신 정보와 지식을 가진 청년 창업농과 함께 영농함으로써 생산성 향상을 극대화할 수 있다.

멀티제너레이션 시대에 어울리기 위해서는 나이가 들었다고 자신을 제한하지 말고 도전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만이 변화의 물결을 헤쳐 나아갈 자격이 있다고 본다.

김정호 환경농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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