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더 이상 물러나 숨지(隱退) 않고 타이어 바꾸고(re-tire) 다시 달려야”

2024-10-04

평균 퇴직 연령 49.3세, 연금 개시 전 5년 간의 소득 공백, 노인빈곤율 40.4%….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 눈에 보는 연금 2023’를 통해 발표한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 수치는 시니어들이 마주할 미래가 어떠할 지 가늠하게 해준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도전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나이를 떠나 누구나 일할 수 있는 ‘평생 현역 사회’ 얘기까지 나오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계속고용의 사례가 많지 않고, 고령자가 일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잔뜩 쌓여있다. 라이프점프는 주명룡(79) 대한은퇴자협회장을 만나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에 관한 견해를 들어봤다. 그는 지난주 서울경제신문과 라이프점프가 개최한 ‘제5회 리워크 컨퍼런스’에서 시니어 권익 비영리단체 ‘대한은퇴자협회’를 설립하고 22년간 고령자 삶의 질 향상, 선진 은퇴 문화 안착과 관련 제도 도입에 앞장서온 공로로 ‘올해의 리워크人(인)’에 선정됐다.

주 회장은 1996년 미국 내 한인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뉴욕에 대한은퇴자협회를 설립했다. 그는 1981년 36세의 나이에 대한항공 국제선 사무장직에서 퇴직한 후 미국으로 이민, 한국인 최초로 맥도날드 운영권 등을 따내며 ‘아메리칸드림’을 이뤘다. 성공한 사업가였던 그의 마음 한 켠에는 타국에서 소수자로 살며 느꼈던 설움을 봉사로 풀고 싶다는 갈망이 늘 있었다.

“미국에 가 보니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작은 도움이라도 나누는 게 일상이더군요. 정치인이나 권력자가 아니더라도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제대로 해보고 싶어 뉴욕대학교에서 비영리 기구(NGO) 특별 프로그램도 들었어요. 그 신념으로 지금까지 협회를 이끌고 있어요.”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실직 중장년이 쏟아져 나오자 그는 한국행을 택하고, 2002년 서울 여의도에 대한은퇴자협회를 재설립했다. 이후 대한은퇴자협회는 2007년 주택연금제도 도입과 2009년 연령차별금지법 제정 등 시니어 삶의 질 향상과 선진 제도 확립에 목소리를 내며 시니어 권익 대표 단체로 자리 잡았다.

주 회장이 협회 설립 초기부터 가장 집중한 부분은 ‘일자리를 통한 시니어의 경제 기회 창출’이다.

“협회를 시작할 2002년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했어요. 기초연금이라는 게 없었고, 월 3만 5000~5만 원 수준의 경로연금이 일부에게만 지급됐으니까요.”

그는 참여정부에 고령사회 대책 태스크포스(TF) 설치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2003년 TF가 꾸려지자 민간 위원으로 활동하며 공공 노인 일자리를 제안했다.

그 결과 2004년 2만 5000개의 노인 일자리가 생겼다. 수요가 많자 당해 1만 개의 일자리가 추가됐고, 20년 지난 지금은 103만 개로 크게 늘며 시니어 사회 참여와 소득 창출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공공 노인 일자리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은퇴자 활용 방안은 ‘배워서 벌고 오래 사는 사회(이하 배벌사)’ 구축이다.

배벌사는 고령자 ‘돌봄’이 아닌 ‘활용’의 관점으로 추진되는 초고령사회 대응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보전하는 방식은 돌봄, 복지 등 구휼적인 측면이 강해요. 복지 분야도 반드시 확대해 나가야 하지만 지금의 5060은 디지털 기기도 익숙하게 사용하고, 이전 세대와는 달라요. 새 시대에는 그들에게 맞는 법이 필요합니다.”

그 일환으로 주 회장은 괜찮은 시니어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민연금 수급자의 평균 월 수령액이 60만 원대에 그칩니다. 노인 일자리의 약 65%를 차지하는 공익형 일자리는 월 29만 원, 저임금 단순노동 일자리지요. 정부 주도 하에 기업이 참여하는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 시니어가 연금과 합쳐 월에 200만 원은 벌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시니어도 퇴직 전후 직업 전환 교육을 통해 노동 경쟁력을 높이고요. 배벌사는 사실상 정년 연장의 다른 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만 배벌사는 중장년 활용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마련됐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주 회장은 “정부와 기업에 여러 차례 러브콜을 보내봤으나 ‘무응답’으로 돌아왔다”며 “정부와 기업, 단체가 힘을 모아야 하지만 속도가 달라 호흡을 맞추기 쉽지 않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다만 고령자 채용 확대가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높이고, 청년층의 취업 기회를 제한한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주 회장은 “임금은 더 일하고 싶은 퇴직자와 인력이 필요한 기업이 재협상해 나가면 되는 것”이며, “청년층과 경쟁하지 않는 일자리를 창출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가사 노동자 시범사업 등에 관해서는 아쉽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저출생 시대의 인력 부족 문제를 시니어 활용이 아닌 외국인 노동자로 풀어나가려는 것이 아쉽다”며 “시니어 근로자는 충직하고, 수십 년간 쌓아온 안목과 지식이 있다. 이런 시니어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건 당사자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자 초고령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주 회장은 무엇보다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오니 은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더군요. 퇴직자 활용이 ‘시니어를 위한 일’이 아닌 ‘기업과 사회를 위한 일’이라고 인식이 바뀌기를 바랍니다. 은퇴의 한자어 ‘隱退’ 자체에는 ‘물러나 숨는다’는 뜻이 있어요. 은퇴를 re'tire', 타이어를 바꿔 끼고 다시 달릴 시점이라고 재해석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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