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역경이 찾아와도 연극은 계속된다"...연극 '마트로시카'

2025-04-09

"이런 시부x, 이게 연극이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을 울린 대사 한 줄. 평범하지 않은 이 대사는 어쩌면, 극 전체를 가장 잘 설명하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지난 5일부터 코미디 연극 '마트로시카'가 지구인아트홀에서 연장공연의 막을 올렸다. 정돈된 무대도, 매끄러운 흐름도 없다. 대신 터질 듯한 웃음과 예기치 못한 감정이 있다. 관객은 웃다가, 멈칫하다가, 다시 빵 터진다.

이야기는 영세 극단 '마트로시카'의 마지막 리허설로 시작된다. 그런데 공연 전부터 사건 사고가 줄줄이 터진다. 주연 배우는 썩은 김밥을 먹고 배탈이 나 쓰러지고, 조연출의 실수로 음향 리스트 세팅은 엉켰다.

게다가 연출의 아내는 갑작스레 등장해 이혼 문제로 무대에 드러눕고, 그 혼란 속에 시의원까지 극장을 찾는다. 누구 하나 온전한 사람이 없고, 분위기는 이미 아수라장. 그런데도 공연은 시작된다. 관객이 들어왔고, 무대는 켜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대는 올라가야 하니까.

먼저 이 작품의 묘미는 무대와 객석,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데 있다. 배우는 출입문을 열고 등장하고, 조연출 역을 맡은 배우는 오퍼실에서 실제 음향과 조명을 껐다 켠다. 극장 전체가 무대가 되고, 관객은 어느새 이야기 속 인물이 된다.

연극의 공간적 상상력을 이토록 유쾌하게 확장한 작품은 흔치 않다. 마치 정말 무대 뒤 리허설장을 몰래 들여다본 듯한 리얼함. 이건 설정이 아니라 진짜다.

웃음의 밀도도 높다. 과한 PPL, 일부러 어색한 대사, 예측불허의 동선까지, 이 모든 혼란이 유쾌하게 이어진다. "이게 무슨 연극이야, 학예회지!"라는 대사조차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안엔 이들이 진짜 연극을 하고 있다는 뚝심이 있다. 실수와 엉성함, 계획된 허술함 속에서 이들은 끝까지 극을 밀어붙인다.

하지만 '마트로시카'는 단지 웃기기 위한 공연이 아니다. 실수를 품고도 끝까지 해내는 진심, 무너지지 않겠다는 의지, 그 모든 것이 웃음 속에 섞여 있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끝까지 밀고 나간다'라는 말은, 단지 위기의 순간을 넘기는 주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연극의 정신이다.

이 극은 공연 직전의 분주한 무대 뒷모습, 갈등과 오해, 감정의 충돌까지 고스란히 드러낸다. 언뜻 보면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누구나 겪어봤을 삶의 장면들이 겹치며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반복되는 일상, 예고 없는 돌발상황, 그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완성해 내야만 하는 압박감. 공연을 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작가 서홍석은 "실수투성이 공연도 살아있는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상상"에서 이 작품을 시작했고, 연출 최해주는 "웃음을 주되, 삶의 진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둘의 의도는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와 함께 무대 위에 고스란히 실현된다.

결국 '마트로시카'는 두 얼굴을 가진 코미디 연극이다. 겉은 코미디, 속은 드라마. 어설픈 듯 보이지만 날카롭고, 엉성한 듯하지만 정확하다. 이 연극은 무언가를 꾸며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망가진 채로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더 웃기고, 그래서 더 진하다.

'마트로시카'는 오는 13일까지 지구인아트홀에서 공연된다.

[ 경기신문 = 류초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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