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해줘 지구를!”···동물의 지혜에 접속하는 ‘동물 인터넷’

2024-11-21

동물 인터넷

마르틴 비켈스키 독일 막스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장은 1990년대 후반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조류학자 빌 코크런과 함께 월동지를 찾아 이동하는 올리브색지빠귀들을 추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밤마다 차를 몰고 소형 발신기가 부착된 새들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는 동안 놀라운 발견을 했다. 새들은 통념과 달리 목적지를 향해 단숨에 비행하지 않았다. 새들은 일정한 고도까지 올라가 소리를 내서 다른 새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다른 새가 없으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다시 소리를 냈다. 끊임없이 재잘대며 다른 새들과 신호를 주고받았다. “새가 타고난 유전 암호를 따르는 생각 없는 자동 기계가 아니라 서로 대화하며 어느 고도로 날아갈지, 어느 방향으로 날아갈지 논의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륙을 횡단하는 새들을 토네이도 추격자들처럼 차를 타고 뒤쫓는 데는 한계가 있다. 동물들이 보내는 신호를 인공위성을 사용해 포착한다면 어떨까. 만약 지구상의 모든 동물에 발신기를 부착하고 거기서 얻는 정보를 인터넷처럼 연결할 수 있다면 어떨까. 개별 동물은 물론 지구 생태계에 대해 방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른바 ‘동물 인터넷(Internet of Animals)’의 시작이다.

<동물 인터넷>은 비켈스키 소장이 지구 궤도의 인공위성과 개별 동물에 부착한 인식표(발신기)를 기반으로 전 지구적 규모의 동물추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이카루스 프로젝트’의 탄생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그가 1980년대 독일 뮌헨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던 학생 시절 지진을 예측하는 동물들의 능력에 관심을 가졌던 때부터 주변의 무관심과 기술적 난제들을 극복하고 2020년 이카루스 프로젝트의 첫 시험 운용에 성공하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이 담겨 있다.

소형 인식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꽤나 상세하다. 예를 들면 새의 비행 고도와 새가 날개를 퍼덕인 횟수, 새의 체온과 심박수, 호흡 속도, 에너지 소모량, 뿐만 아니라 새가 날고 있는 위치의 날씨와 습도 등의 정보까지 이카루스 서버로 전송된다.

동물 인터넷은 단순히 야생에서의 제한적 관찰로는 얻을 수 없는 동물의 행동 패턴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우리는 우리가 아는 한 지구와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지능적인 센서, 즉 동물의 지혜를 공유할 수 있다.”

우선 동물 인터넷은 동물을 매개로 하는 전염병 예방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사라졌지만 사스, 메르스, 에볼라 등 최악의 동물 매개 질병은 언제든 되돌아 올 수 있다. 동물 인터넷을 통해 질병이 확산하는 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면 인간에게 전염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화산이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 엘니뇨의 강도 같은 거시적 규모의 기상 현상을 예측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자연의 위험을 감지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동물들을 살아 있는 센서로 이용한다면 현재 기상관측 시스템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동물은 향후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데 자신의 생존이 달려 있기 때문에 지구 최고의 생물학적 관찰자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동물 인터넷은 동물의 정확한 위치와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종을 보호하는 데 필수적이다.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실업률이 높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동물보호와 관련한 새로운 고용을 창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인류가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탐사하는 대신 동물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면서 이카루스 프로젝트에 문명사적 중요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동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사실 지구 밖 우주에서 들려온 그 어떤 메시지보다 인간의 사고방식을 더 근본적으로 뒤바꿀 것이다. 동물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목소리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뿌리 깊은 문화적 인식은 쉽게 사라질 것이다.” 이카루스 프로젝트가 그동안 자연과 동물을 마구잡이로 학대하고 착취해온 인간이 파괴의 역사를 뒤로 하고 다른 생물종과 동반자가 되는 길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막스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가 운영하는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인 ‘무브뱅크’에는 1500여종의 동물들이 보내는 데이터가 수신되고 있다. “매일 3만 마리의 동물로부터 대략 1기가바이트의 데이터가 동물 인터넷에 추가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동물 인터넷의 무한한 잠재력은 아직까지는 ‘가능성’의 영역에 있다. 막스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는 애초 러시아 연방 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의 도움을 받아 국제우주정거장(ISS)의 러시아 모듈을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시험 가동을 시작한 지 2년이 채 안 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로스코스모스와의 협력은 중단됐다. 연구소 측은 ISS를 대신할 초소형 위성 큐브샛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큐브샛 기반 운영 시스템이 2024년 가을부터 데이터 수집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5년과 2026년에는 각기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카루스 큐브샛 수신기가 발사될 예정이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