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연구실 회식 자리에서 부동산이 화제에 올랐다. 한 졸업생은 자신이 ‘영끌’한 서울 강북 아파트 가격이 회복될 거라며 확신에 찬 어투로 이야기했다. 아직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큰 그림이 명확하게 제시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런 기대가 현실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최근 강남 아파트 가격 상승에 관한 기사가 적지 않다.
문제는 지금 시장 상황이 앞선 노무현·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두 시점 모두 강남 아파트 가격이, 그중에서도 특히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고 있었다. 두 정부는 당시 아파트 가격 상승 원인을 다주택자에게 돌렸다. 약속이나 한 듯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몰았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부동산 실패
강남·다주택 수요를 투기로 몰아
김대중처럼 시장 친화 정책 펴야

노무현·문재인 정부는 수요 규제와 다주택자 중과 정책을 점점 더 강화했다. 그 결과 풍선효과가 생기면서 강남을 넘어 수도권 전체로 가격 급등 현상이 번졌다. 이재명 정부에서도 유사한 실패가 예약된 것 같은 표피적 정책 선택을 하지 않을까 벌써 우려스럽다.
인구 축소기가 이미 시작됐고, 머지않은 미래에 도시 축소기가 도래할 것이다. 이번 정부는 그런 미래에 대비하는 처방을 담는 부동산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 방향성은 대표적 대도시권의 성장 동력을 유지하는 부동산시장 정상화와 합리적 공급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국가경쟁력의 핵심인 서울 대도시권은 거주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비효율적인 공간 구조를 갖게 됐다. 예컨대 수도권에서 출퇴근에 2시간가량이 걸릴 정도로 통근 패턴이 낭비적이다. 장기간 왜곡된 부동산 정책이 도시 공간구조의 비효율성을 키웠고, 이는 국민경제 활동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졌다.
낭비적 통근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최적의 대안이 직주근접(職住近接)이다. 좀 더 많은 시민이 직장 가까이에 살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도시 외곽에 택지를 개발하기보다는 그동안 높이지 못했던 중심도시의 주거밀도를 충분히 높이고, 중심도시인 서울과 경기 사이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규제를 합리적으로 완화함으로써 재건축·재개발을 좀 더 활성화하고, 중심도시 인근의 가용한 그린벨트 활용을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과거처럼 개발 이익을 환수해서 원하는 도시기반시설을 개선하고 무작정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성장기에 제도화한 개발이익환수 장치의 한계를 인식하고, 합리적인 조정과 공공의 부담을 민간의 역할로 대체해가야 한다. 건축·건설 관련 비용 급등으로 극심하게 위축된 주택 공급의 이면에는 재건축부담금이나 공공임대주택 공급 요건 같은 개발이익환수 장치들이 야기한 저항이 있다.
요즘 주택시장 양극화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수준이다. 그 원인의 중심에 과도한 다주택자 규제가 있다. 다주택자 규제는 안정적인 자산 보유자가 안정적인 민간임대주택 공급 및 운영자라는 사회적 역할을 인정하지 못하고, 똘똘한 한 채에 대한 과소비를 조장한다. 일본처럼 부동산시장 붕괴에 대한 우려는 똘똘한 한 채에 대한 과수요를 더 자극하고 있다.
다주택자 규제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다. 다주택자 규제의 대표주자인 종합부동산세는 피할 수 없는 재산세 전가 효과로 월세 급등을 초래했다. 양도세·취득세 중과는 시장의 원활한 거래를 위축시켜 시민들의 효율적인 주거 입지 선택과 소비 조정을 방해했다.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파생되는 소비, 고용, 소득 증가를 위축시켜 경기 침체를 부추겼다. 다주택자 규제 때문에 안정적인 투자자를 떠나보낸 다세대주택 시장은 전세 사기라는 심각한 사회현상을 촉발하는 원인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김대중 정부의 시장 친화적 부동산 정책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시장 친화적 정책은 가격 통제보다 가격 상승 압력을 활용한 공급 확대를 기반으로 역대 정부 중에 자가 보유율을 가장 높게 끌어 올렸다. 역설적으로 ‘1가구 1주택 소유주의’를 내세운 노무현 정부에서는 자가 보유비율이 크게 하락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지금 부동산 시장의 기초체력을 보면 과거 두 번의 큰 실패에 이어 또다시 실패할 여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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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