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속 여제’ 이상화(36·은퇴)가 선수 시절 ‘꼬맹이’라고 부르며 유독 아꼈던 어린 후배 선수가 있었다. 꼬맹이는 18세 나이에 이상화가 세운 세계주니어신기록을 10년 만에 깨뜨리며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새로운 기대주로 주목 받았다.
세월이 흘러 18세의 선수는 더 이상 꼬맹이가 아닌 ‘새로운 빙상 여제’로 불리며 다가오는 2월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과 3월 하마르 세계선수권,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의 유력 메달리스트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 김민선(26·의정부시청) 이야기다.
2일 서울 태릉빙상장에서 만난 김민선은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세계 대회가 예정돼있는 올해를 기다려왔다고 설레했다. 그는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왔기 때문에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등 큰 대회를 앞두고 있지만 긴장보다 설레는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포스트 이상화’로 주목 받았지만 이후 김민선의 커리어는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는 16위에 머물렀고 올림픽 후에는 허리 부상으로 2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치료와 재활을 받으며 보냈다. 김민선은 당시에 대해 “국내에서 열렸던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마음에 무리를 해 탈이 났다”며 “선수 생활 통틀어 가장 힘든 시기였는데 ‘내가 다시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더 괴로웠다. 그래도 응원과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주위에 있어 잘 극복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부상 이후 부진하던 김민선이 반전을 써 내려간 것은 2022년 11월부터다. 노르웨이에서 열린 시즌 첫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정상에 선 김민선은 기세를 몰아 2023년 1월 미국에서 열린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 3관왕(500m·1000m·혼성 릴레이)을 달성하며 날아올랐다. 2022~2023시즌에는 1∼6차 월드컵 여자 500m에서 금메달 5개와 은메달 1개를 휩쓰는 무결점의 활약을 선보였고 지난해 세계선수권 여자 500m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김민선은 최고의 순간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더 나은 기량을 위해 과감한 변화를 택했다. 2023~2024시즌 후에는 요한 더빗, 예룬 릿벨트 등 네덜란드 코치진이 지도하는 국제 훈련팀 '팀 골드'에 합류해 더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운동 선수가 자신이 해오던 훈련 방식을 바꾸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모험이지만 김민선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원하는 목표를 위해 조금이라도 발전하려면 반드시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모든 훈련의 과정과 성과를 확인하며 진행하는 훈련 방식이 체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스케이트화를 바꾼 것도 그가 시도한 변화 중 하나다. 김민선은 “지난 시즌을 앞두고 스케이트화를 교체했는데 생각보다 성적이 나오지 않아 가장 좋았던 2022~2023시즌에 신던 스케이트화로 바꿨다. 그 이후 심적으로도 편한 느낌이고 훈련할 때도 전보다 잘 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2025년을 최고의 해로 만들기 위해서는 하얼빈에서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게 중요하다. 김민선도 이점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아시안게임이라 꼭 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 주 종목인 500m외에도 1000m, 100m, 팀 스프린트까지 4관왕을 달성해 2025년이 ‘김민선의 해’가 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자신감 넘치는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