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빠름과 효율이 미덕인 디지털 시대에 ‘쉼’을 향한 관심이 뜨겁다. 슬로우와 힐링을 테마로 내세운 방송과 웹 예능, 음악 등 ‘쉼표’를 제공하는 콘텐트가 세대 불문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지난 8일 유튜브에 공개된 JTBC 웹 예능 ‘흙심인대호’는 김대호가 소박한 텃밭 라이프를 실천하며 흙과 자연, 관계 속에서 삶의 본질을 돌아보는 시간을 전한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곁눈질로 배운 잡지식을 총동원해 농사를 짓는 힐링 콘텐트다. 김미연 PD는 김대호 전 MBC 아나운서의 프리 소식을 듣자마자 농사 예능의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러브콜을 보냈다.
1년간 ‘제대로’ 농사를 지어보기로 한 김대호가 갈퀴로 밭을 갈고, 비닐로 덮는 ‘멀칭’ 작업을 하는 게 1화 내용의 대부분. 밭일을 돕는 스태프들에게 훈계를 늘어놓고, 비가 내리면 “야, 기분 좋다 기분 좋아” 감탄사를 내뱉으며 쉬지 않고 일한다. 특별한 사건 하나 없지만 공개 3일만에 조회수 23만회를 넘겼다. 댓글에는 “농사짓는 거 보는 게 왜 힐링이 되지?” “마음 편하고 좋다” 등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김대호는 지난 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실은 내가 유튜브 중독자인데, 자극적인 콘텐트를 계속 보는 것이 어느 순간 힘들더라. 그래서 더 절실하게 이런 이런 콘텐트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에서는 웹툰 작가 기안84가 울릉도에 지은 민박집에서 손님을 맞는 예능 ‘대환장 기안장’이 화제를 모았다. 사장 기안84와 직원으로 함께한 방탄소년단 진, 지예은은 불편함을 감수하며 얻는 낭만에 대해 전한다. 점차 기안84 방식대로 온몸으로 자연을 받아들이는 진과 지예은의 모습이 웃음포인트다. 벌써부터 시즌2 이야기가 나온다.
유튜브에서는 웹툰 작가 이말년의 ‘침착맨의 둥지’가 팟캐스트(라디오) 포맷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말년이 취미나 고향, 관심사 등 공통점을 가진 세 명의 게스트를 초대해 소소한 일상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평균 1시간 30분가량의 러닝타임으로 유튜브 콘텐트로는 다소 긴 호흡이지만, 100만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도파민 콘텐트에 지친 대중이 자연스럽게 천천히 흐르는 콘텐트를 찾고 있다. 김대호가 보여준 자연친화적 삶이나 기안장처럼 불편함 속에서 진짜 쉼을 추구하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공감을 얻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쉼’을 채워주는 것은 예능 콘텐트뿐이 아니다. 최근 차트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음악들 역시 힐링의 정서를 담고 있다. 조째즈 ‘모르시나요’는 2013년 다비치 원곡을 나른한 재즈 감성으로 리메이크해 멜론 차트 4위에 랭크했다. 멜론 차트 1위까지 올랐던 황가람 ‘나는 반딧불’은 투박한 포크 감성 위에 자아에 대한 초라함을 발견하고 위로하는 노랫말이 어우러진 노래다. 최근 주우재의 커버 영상으로 인기인 10㎝ ‘너에게 닿기를’은 담백하고 따뜻한 어쿠스틱 사운드로 관계 속 치유의 순간을 전한다.
오프라인에서도 휴식을 주제로 한 행사가 인기다. 지난해 화제 속에 열렸던 ‘수면 콘서트’는 폭신한 매트리스 위에 누운 채 음악을 들으며 잠드는 이색적인 힐링 경험을 제공했다. 요가와 명상 중심의 페스티벌 ‘원더러스트’도 MZ 세대의 큰 호응 속에 오는 7월 19~20일 서울숲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