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미국 간 관세 협상의 막이 24일(현지시간) 올랐다. 양국 정부 간 ‘2+2 통상 협의’가 이날 오전 8시(한국시간 24일 오후 9시) 워싱턴 DC에서 열리면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한국 측 수석 대표로 참석했고, 미국 측에선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협상 테이블에 참여했다.
오전 8시에 시작된 협상은 78분 만인 오전 9시 18분쯤 마무리됐다. 최 부총리와 안 장관은 협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방위비 문제가 언급이 됐냐”는 취재진 질문에 “추후 브리핑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만 했다. 정부는 조만간 협의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협의 테이블에는 최 부총리와 안 장관 외에 최지영 기재부 차관보, 박성택 산업부 1차관 등이 배석했다. 관심이 모아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등장’은 없었다.
이번 협상에서 양측은 관세 문제는 물론 미국 측이 그간 주장해 온 자동차·농산물·의약품 등 다양한 분야의 비관세 장벽까지 포괄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재부와 산업부 외에 외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토교통부·환경부·농림축산식품부·보건복지부 등 모두 8개 관계 부처 약 6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합동 대표단을 꾸렸다.
최 부총리와 안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정을 요구해 온 양국 무역 불균형 해소 차원에서 한·미 조선 협력과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협력에 방점을 두고 신중하게 협상에 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한국에 부과 중인 기본 관세 10%와 철강·알루미늄, 자동차 등에 적용되고 있는 25%의 품목별 관세의 감면 또는 최소한의 적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첫 협의 테이블이 마련된 것인 만큼 이날 분위기는 초반 탐색전 성격이 강했으며 중간중간 팽팽한 기싸움이 흐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미측이 방위비 인상을 패키지로 협상하길 원하는 입장인 반면 한국 정부 대표단은 관세·통상 이슈와 방위비 문제는 별도라는 입장이어서 협상에서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앞서 베센트 장관은 전날 열린 국제금융연구소(IIF) 주최 행사에서 “글로벌 경제 관계는 안보 파트너십을 반영해야 한다고 믿는다”며 “미국이 안보와 열린 시장을 계속 제공하면 동맹국들은 공동의 방어에 대해 더 강한 헌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에서 안보 등 비관세 현안까지 한꺼번에 논의하는 ‘원스톱 협상’ 방식을 선호하는 만큼 한·미 간 통상 협의에서 방위비 인상 카드를 협상 레버리지 극대화 차원에서 활용할 것임을 예고한 대목으로 풀이됐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일 교역 상대국의 ‘비관세 부정 행위’ 8가지를 열거하며 첫 번째로 환율 조작을 꼽은 바 있어 환율이 한·미 양국 협상 테이블의 쟁점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원화 가치 저평가 현상이 상당 기간 지속돼 오면서 미국의 관세 정책 효과를 상쇄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전날 워싱턴에 도착한 안 장관은 이번 협상 목표와 관련해 “상호관세를 철폐하는 것이 목적이고 25%의 품목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 자동차의 경우 대미 교역에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 신속하게 이 문제를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며 “한·미 교역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동차”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70여 개 교역 대상국별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 한국에는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실제 발효된 지 약 13시간 만인 9일 오후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국가에 대해 ‘상호 관세 90일 유예’ 결정을 내린 상태다.
최 부총리와 안 장관은 전날 오후 워싱턴 모처에서 1시간 20분가량 사전 실무 협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협상 목표를 재확인하고 미국 대표단과의 협의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최종 점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