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4~406·사진)는 아이스킬로스 및 소포클레스와 함께 흔히 고대 그리스의 3대 희곡 작가의 막내로 꼽힌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는데, 삶은 불우했다. 말년에 아테네를 떠나 마케도니아에서 여생을 마쳤다. 평생에 92편의 작품을 썼다지만, 지금까지 ‘퀴클롭스’ ‘트로이아 여인’ ‘헬레네’ 등의 대표작이 전해지고 있다. 그 제목에서 보듯이 그는 여성의 심리 묘사에 탁월한 솜씨를 보였다. 그 시대의 희곡은 장편 서사시였다.

그리스의 문명, 곧 헬레니즘을 이야기할 때면 파르테논 신전이나 아름다운 조각상을 떠올리지만 실은 그리스 문명의 진수는 시에 있다. 스파르타와 아테네 사이에는 전쟁이 빈번했고, 따라서 포로도 많았다. 그런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니키아스전’에 보면, 스파르타의 시라쿠사에서는 아테네 출신의 전쟁 포로를 분류하여 노예로 삼을 때 기이한 질문을 했는데 “너는 에우리피데스의 시를 아느냐?”는 것이었다. 포로가 미성으로 에우리피데스의 시를 암송하면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저 유명한 철학자로 알지만, 문학에 입문하는 사람은 그의 『시학(詩學)』을 먼저 읽어야 하며, 공자(孔子)께서도 아들 백어(伯魚)에게 처음 가르친 말씀이 “시를 읽어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시인들은 어떤가? 가난하게 산다. “시인은 늘 그 시대의 슬픔을 앓기 때문에” 우울하다는 윤동주(尹東柱)의 말이 생각난다. 동서고금에 시인들이 유족하게 살았다는 기록은 드물다. 그러나 시인의 불행은 곧 우리 모두의 아픔이다. 그러므로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시집 한 권 사 보심이 어떨지? 읽고 안 읽는 것은 그다음 문제이다. 칸트의 말에 따르면, 사놓은 책은 읽기 마련이란다. 고결한 시 한 수를 우아하게 외울 수 있다면 그대의 인품이 달리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