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 피구라, 아름다움 향한 열정

2025-08-06

이탈리아어에 ‘벨라 피구라’(bella figura)란 말이 있다. ‘아름다운 모습’이란 뜻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탈리아인의 남다른 열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려는 이탈리아인들의 미적 취향은 유명하고, 이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명품을 탄생시킨 원천일지 모른다. 바짓단과 양말 사이 맨살을 보이지 말라는 금기를 지키거나 무심하게 흘러내린 한 올의 머리카락을 연출하는 세심함이 ‘벨라 피구라’의 앙증맞은 디테일들이다.

얼핏 ‘벨라 피구라’는 내면보다 표면에 집착하는 피상적 태도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종종 가식과 위선, 외모지상주의로 오해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오해에도 개의치 않고 이탈리아 저널리스트 베페 세베르니니는 책을 겉표지로, 정치인을 미소로, 자동차를 디자인으로, 사람을 직책으로 판단하는 것이 이탈리아인들의 방식이라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한다. 그는 ‘벨라 피구라’를 이탈리아라는 나라의 특성으로 설명하는데, 천국이 되기엔 너무 무질서하고 지옥이 되기엔 너무 많은 스타일이 존재하는 ‘색다른 연옥’의 문화적 코드라고 재치 있게 묘사한다.

물론 ‘벨라 피구라’에는 훨씬 복잡한 맥락과 의미가 담겨 있다. 이를 르네상스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사례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당시 도시 규모는 작았다. 유럽의 메트로폴리스였던 피렌체도 인구 10만명으로, 오늘날 서울의 가장 작은 구보다 작았다. 그런 공간에서 시민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고, 자기 모습이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비칠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권력 투쟁과 생존 경쟁이 벌어진 그 비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친교와 소통, 사회성의 요구에 본능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으니, 르네상스 도시국가란 참으로 고밀도의 치열한 세계였다.

이로부터 ‘세상은 무대’(theatrum mundi)라는 말도 나왔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세상이라는 극장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라는 말이다. 무대 위 연기자들은 일거수일투족이 관객에게 노출되고 평가받게 마련이므로 자신에게 꽂힐 시선들을 의식하며 말과 행동, 표정과 몸짓을 치밀하게 연출함으로써 세상의 무대에서 최고의 모습을 다듬어 보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삶의 연극성에 대한 인식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이어진다. 즉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알기 위해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자신을 관찰하는 법을 배운다. 자신을 객관화해 성찰하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가 자기 모습을 그림에 살짝 끼워두거나, 작가가 3인칭으로 말하는 관행은 그런 객관화의 사례다. 그렇듯 르네상스인들은 자신을 돌아보며 좋은 인상을 주고 매력을 끄는 방법을 찾았고, 자기만의 스타일로 다양한 상황에 맞는 매너를 익혔다.

그렇다면 ‘벨라 피구라’는 외모만을 중시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이자 타인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려는 의지이며, 이를 위해 체득된 격식과 배려를 갖춘 태도다. 그런 태도는 응급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데, 세베르니니가 전하는 이탈리아 항공 승무원의 사례가 흥미롭다. 서비스에는 서툴고 외양을 뽐내는 데만 정신이 팔린 듯 보인 승무원이 승객이 커피를 엎지른 것을 보자 돌변해 팔을 걷어붙이고 엄마와 자매, 친구처럼 승객을 돕는 것이다. 이 경우에 아름다운 모습은 정 많고 친절한 태도를 포함한다.

‘벨라 피구라’는 보는 이에게 기쁨을 준다. 그러나 불행히도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그와 정반대되는 모습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특히 정치사회 지도층 인사들조차 무례한 언행을 일삼으며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말하고 또 이를 번복하며 억지를 쓰고 최소한의 체면마저 벗어던지는 ‘브루타 피구라’(brutta figura), 즉 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개탄스럽다. 공들여 만들어지고 가꾸어진 ‘벨라 피구라’가 새삼 간절히 보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