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울을 본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이미 젊음을 훨씬 지나 노년의 입구에 와 있다. 나는 그 입구에 서서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누스 카바피스의 시를 떠올린다.
“몸이여, 기억하라. 그대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를,/ 그대가 누웠던 잠자리를, 뿐만 아니라/ 그대의 눈동자에서 선명히 빛나고/ 그대의 목소리에서 흔들리던 욕망들을,/ 우연한 장애물이 헛된 것으로 만들어버린 그 욕망들을./ 이제 모든 것이 과거의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그대는 그렇게 굴복하고 말았나 보다./ 불타오르는 듯한 욕망에./ 기억하라, 그대를 응시하던 눈동자에서,/ 그대를 향한 목소리에서 흔들리던 욕망들을,/ 기억하라, 몸이여.”

‘몸이여, 기억하라’는 그 시와 함께 지금의 내 몸이 젊음에 속해 있던 지난날의 내 몸을 뒤돌아본다. 회한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지나온 길들. 그 길에서 참 많이 넘어지고, 엎어지고, 나둥그러진 채로 많은 것을 흘려보내고, 놓치고, 잃어버렸지만, 빈손으로 그 무모한 젊음의 욕망에 도전하고, 싸우고, 서로 얼싸안고, 울고, 웃었던 지난날들. 그 쓰라리고 황홀한 흔적들이 지금의 내 몸이 되고, 내 얼굴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못나고 펑퍼짐하고 주름투성이면 어때. 괜찮아, 괜찮아, 이게 진짜 나니까! 저절로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되고 남은 나날들이 궁금해지고, 앞으로 좀 더 잘 늙어가야지, 하는 노년의 희망, 노년의 꿈같은 게 생겨나는 듯해 새로운 기운이 솟는다.
비록 젊은 날 불타오르던 욕망들이 ‘우연한 장애물’ 때문에 ‘나이’ 때문에 사그라들고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해도, 그 욕망들 때문에 항상 불타올랐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 노년의 입구에 서니 그 또한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흔적 같아 거울 속 나는 환하게, 정말 환하게 웃는다. 한 번도 나는 그 불을 끄기 위해 분투한 적 없고, 타오르면 타오르는 대로 그냥 고스란히 불타거나, 타들어 갔으니까.
그러니 내 몸이 기억하는 그대로 나는 자연스럽게, 이대로 계속 늙어가는 나를 정겹고 애틋한 마음으로 지켜봐도 되지 않을까. 그리스 옛 시인의 시구처럼 ‘몸이여, 기억하라’고 애태우지 않아도, 이 광활한 우주에서 한갓 모래알에 불과한 나, 그 몸속에 담긴 나의 흔적, 내 삶, 내가 온 힘을 기울여 살아온 그 흔적과 기억들이 이 우주보다 더 넓을지 우주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고, 작고, 작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 끝이 무엇이든 어디든 나는 지금까지 니체의 제자(?)답게 ‘아모르 파티(Amor fati)’로 일관되게 살아왔으니 내 몸이 나를 기억하는 그대로 내 노년 또한 소박하고 치열하게 평온하지 않을까.
항상 문이란 문은 활짝 열어젖히고, 한 번 열린 문은 절대 닫지 않는 아름다운 습관을 가르쳐준 시(詩)와 함께!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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