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중심 구조 전환" 명분
브랜드 가치 고려해 자회사 유지 가능성도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히타치제작소가 일본 내 백색가전 사업 매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 등 복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히타치는 디지털 기반 사업 구조로의 전환 가속화를 매각 배경으로 내세우고 있다.
5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히타치는 그룹 계열사인 '히타치 글로벌 라이프 솔루션즈(Hitachi GLS)'가 담당하는 일본 국내 백색가전 사업을 외부에 매각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복수 기업과 접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매각 조건이나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삼성전자 등 해외 주요 전자업체들이 잠재적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인수 금액은 수천억 엔(약 수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히타치는 이번 매각 검토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룹 내에서는 수년 전부터 백색가전 사업이 핵심 전략에서 멀어졌다는 분석이 제기돼 왔다.

현재 히타치는 철도, 전력, 산업기기, IT(정보기술) 서비스를 중심으로 디지털 기반의 B2B(기업 간 거래) 사업 구조를 강화하고 있으며, '루마다(Lumada)'라는 자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유지·보수까지 포함한 장기 수익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반면 백색가전은 매각을 통한 단발성 수익이 중심인 구조로, 판매 후 수익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히타치는 이미 2021년, 해외 가전 사업을 튀르키예의 다국적 가전제품 제조업체 아르첼릭에 매각한 바 있으며, 이번 매각 추진은 국내 사업 부문까지 구조조정을 확대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타치 내부에서는 브랜드 인지도 측면에서 백색가전의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도 있다. 히타치는 소비자 대상 직접 사업이 적은 기업이기 때문에, 가전제품을 통해 대중적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하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히타치는 매각 외에도 사업 유지 가능성을 병행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내 백색가전 시장은 코로나19 이후의 수요 증가와 고부가가치 전략으로 최근까지는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으로 성장 정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전자업계는 이미 2010년대 이후 중국 등 아시아 기업들에 백색가전 주도권을 넘긴 상태다. 하이얼은 산요전기, 미디어그룹은 도시바 가전 부문을 각각 인수했으며, 대만 폭스콘은 샤프를 손에 넣었다.
히타치의 이번 결정은 일본 기업이 백색가전 시장에서 한 발 더 물러서며, 글로벌 가전 시장 재편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