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물 사서 ‘물려받았다’ 속이고 지정 신청
지정 과정에서 문제 생겨 취소된 건 처음

도난된 고서를 사들인 뒤 국가지정유산으로 신청한 사실이 적발돼 논란을 빚었던 <대명률>의 보물 지정이 취소됐다.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유산이 지정 취소된 첫 사례다.
11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문화유산위원회 산하 동산문화유산분과위원회는 지난달 13일 회의를 열고 <대명률>의 보물 지정 취소 계획을 논의한 뒤 이를 가결했다. 국가유산청은 보물 지정 취소 계획을 홈페이지와 관보 등에 공고할 예정이다.
<대명률>은 조선시대 형법의 근간이 되는 자료로 여겨져 왔다. 중국 명나라의 형률(범죄와 형벌에 관한 법률 체계) 서적으로 1389년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은 2016년 7월 이를 보물로 지정했으나, 그해 경기북부경찰청은 전국 사찰과 사적, 고택 등에서 문화유산을 훔친 도굴꾼과 절도범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대명률>이 장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북 영천에서 사설 박물관을 운영하는 A씨는 2012년 5월 장물업자로부터 <대명률>을 1500만원에 사들였다. A씨는 같은 해 10월 대명률을 국가유산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하며 입수 경위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속였다. 영천시는 <대명률>을 2013년 12월 보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했고, 국가유산청은 2년여간의 조사와 검토 끝에 보물로 지정·고시했다.
그러나 <대명률>을 판 장물업자가 A씨로부터 국가유산 지정 대가 1000만원을 추가로 받지 못하면서 수사기관에 도난 및 판매 사실을 알렸다. A씨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2022년 4월 징역 3년형이 확정됐다.
<대명률>을 보유했던 문화 류씨 집안이 세운 서당 육신당 측은 1998년 건물 현판과 고서 등 유물 81건, 235점이 사라졌다며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했다. 국가유산청은 2011년 <대명률>이 도난된 사실을 공고했다.
당국은 판결 이후 <대명률>의 지정 취소를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유산청은 보물 지정 당시 하자가 있던 것으로 판단하고, 위법하거나 부당한 처분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행정기본법’을 근거로 취소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국보나 보물이 지정 전 판단했던 가치가 지정 이후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지정이 해제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지정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국보나 보물 지정을 취소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유산청은 보물 지정 취소가 확정 판결 이후 3년이 걸린 데 대해 “지정 취소를 처음 하기 때문에 법률 검토, 전직 전문가들 검토 등 행정에 필요한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설명했다. 도난 신고가 있었음에도 보물로 지정했던 경위에 대해서는 “도난 신고가 됐더라도 지금처럼 사진이 자세히 남아 있지 않아 (장물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고 해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