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간 6151만명의 미국인이 받은 9300만건의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 부작용으로 약 10만2700건의 암이 발병할 것으로 예측된다.’
병원 CT 검사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가 이런 정보를 듣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2023년 CT 검사를 받은 6200만명의 미국인 중 10만2700명이 방사선으로 인한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이 연구 결과는 미국 의학 전문 플랫폼 ‘메드스케이프’와 독일 공영 도이치벨레방송 등이 지난 4월 보도한 내용이다.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 플로리다대, 영국 암연구소(ICR) 등이 공동 진행한 이 연구 결과는 지난 4월 내과학 분야 세계적 권위지인 ‘미국의사협회지 내과학저널(JAMA Internal Medicine)’에 게재됐다.
컴퓨터단층촬영을 의미하는 ‘Computed Tomography’의 약어인 CT는 X-선을 투과시켜 그 흡수 차이를 컴퓨터로 재구성해 인체의 단면영상 또는 3차원적인 입체영상을 얻는 영상진단법이다. 아주 작은 조직의 밀도 차이를 구별할 수 있어 질병의 조기진단과 병변의 이상 유무 판별이 가능하다. 검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강 편익이 워낙 크기 때문에 방사선 피폭량이 X레이 등 다른 의료영상 검사보다 높음에도 의료현장에서 점점 널리 사용되고 있다.

부모들이 자녀 CT 검사 전 해야 할 일
캘리포니아대 등 연구진은 논문에서 현재처럼 CT 검사를 자주 받는 의료 관행이 계속될 경우 CT 검사로 인한 암 발병은 미국에서 연간 신규 암 진단의 5%를 차지하게 될 수 있으며, 이는 알코올 섭취(5.4%)나 체중 과다(7.6%) 같은 다른 중요한 암 발병 요인과 비슷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CT 검사가 다소 높아 보이는 암 발병 건수로 연결될 것이라는 과학적 예측은 사실 저개발국에선 사치스러운 얘기일 수도 있다. 기본적 의료장비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첨단 의료장비 부작용까지 걱정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CT 검사를 비교적 쉽게 받을 수 있는 선진국에서 의료 방사선 피폭은 새로운 암 발병의 원인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각국 보건당국이 우려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WHO는 특히 CT 검사로 인한 부작용을 더욱 크게 받을 수 있는 어린이들에 주목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방사선에 취약하며 작은 신체로 인해 CT 검사 때 필요 이상으로 높은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다”면서 “의료 전문가와 환자, 가족 간에 정보에 입각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효과적인 리스크커뮤니케이션(위험 의사소통)이 필요하다”고 WHO는 권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레베카 스미스-바인드만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교수가 권고한 내용은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스미스-바인드만 교수는 앞서 언급한 미국 내 CT 검사 부작용 관련 연구를 주도한 과학자다.
지난 11월 9일 미국 공영 PBS방송에 출연한 스미스-바인드만 교수는 자녀가 CT 검사를 받기 전 “의사와 대화를 통해 ‘이 검사가 정말 필요한가요?’라고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면 CT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외래 진료를 받는 경우라면 ‘지금 당장 필요한가요?’, ‘방사선을 사용하지 않는 MRI(자기공명영상)나 초음파로 대체할 수는 없나요?’라고 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미스-바인드만 교수의 권고처럼 의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서 CT 검사를 거부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 하지만 CT 검사가 암 발병 위험을 아주 약간이라도 높이는 것이 사실이라면 ‘과잉 의료’로서의 CT 검사는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CT 검사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환경에서 사는 이들이라면 말이다.
한국인 CT 검사 피폭량 가장 높은 편
프랑스 트루와공대 연구진이 지난 9월 국제학술지 ‘종합환경과학’에 발표한 ‘개별 방사선 노출 발자국의 전국 및 지역 평가’ 논문을 보면 선진국 국민의 연간 평균 방사선 피폭량은 미국을 크게 뛰어넘는 경우가 많았다. 국가별로 1인당 연간 평균 방사선 피폭량을 보면 미국인이 3.0mSv(밀리시버트)인 데 비해 덴마크와 벨기에는 4.0mSv, 독일은 3.8mSv, 프랑스는 4.5mSv, 일본은 4.7mSv 등으로 나타났다. 모두 의료기관 접근성이 높고 CT 검사를 비교적 쉽게 받을 수 있는 나라들이다. 방사선량을 측정하는 단위인 밀리시버트는 피폭량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어떨까. 세계 주요국 가운데 한국인의 연간 평균 방사선 피폭량은 5.4 mSv로 가장 높다. 연구를 이끈 김준범 트루와공대 교수는 “한국의 방사선 노출 발자국은 연간 3.8~7.0mSv 범위로 나타났다”며 “이는 다른 국가의 연간 2~4.5mSv보다 높은 수치였고, 특히 의료로 인한 방사선 노출이 높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인의 피폭량 5.4mSv 가운데 의료 방사선 노출은 3.2mSv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고 했다.
논문을 보면 한국인의 방사선 피폭 발자국(REF)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의료 방사선(58%)였고, 실내 방사선이 27%로 뒤를 이었다. 자연 방사선은 15%가량으로 나타났다. 의료 방사선은 진단 및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는 CT 검사, 핵의학 검사, 엑스레이 등에서 노출되는 방사선을 말한다. 실내 방사선은 건물 등 실내 환경에서 발생하는 방사선으로 주로 라돈에 의해 피폭되는 경우를 말한다. 자연 방사선은 우주선이나 토양, 식품 등으로 인한 자연적 피폭의 경우다. 특히 의료 방사선 피폭에서 CT 검사는 60~8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T 검사의 횟수가 전체 의료 영상 검사의 10~20% 수준임을 감안하면 그만큼 CT로 인한 피폭량이 크다는 것을 추산할 수 있다.

한국인이 CT 검사로 인한 방사선 피폭량이 높다는 점은 보건복지부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2023년 기준 CT 검사 장비 수는 인구 100만명당 45.3대로 OECD 평균(31.1대)의 1.5배에 가까웠다. 2023년 기준 한국인의 인구 1000명당 연간 CT 검사 횟수는 333.5회로 다른 선진국들의 1.5~2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미국은 인구 1000명당 연간 CT 검사 횟수가 254.5회, 프랑스는 228.0회, 독일은 168.5회, 호주 167.1회 등이며 OECD 평균은 177.9회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물론 이 같은 CT 검사 증가와 그로 인한 피폭량 증가가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100만명당 CT 검사 장비의 수는 세계 최다인 119.8대에 달한다. 일본인의 연간 피폭량은 한국보다 다소 낮지만, 다른 선진국보다 높은 4.7mSv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일본 임상의학위원회와 일본학술회의 등은 2017년 ‘CT 검사에 따른 의료 피폭을 저감하기 위한 제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은 “일본은 CT 검사 장비가 널리 보급돼 있고, 인구당 대수도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검사 수 증가로 인한 피폭량이 증가할 우려가 있다”며 “의료 종사자는 의료 피폭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갖춰야 하며, 정부는 CT 검사 적용 기준을 마련·보급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김준범 교수는 “방사선 노출 정도와 빈도, 원인 등에 대한 자료들을 지역별로 분야별로 잘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기반으로 건강 악영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논문에서 제시한 방사선 발자국과 같은 지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런 지표를 활용해 인체 피해 및 영향에 대한 연구들을 더 많이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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