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카터는 18세기에서 19세기를 살았던 영국 여성이다. 그녀는 남녀를 통틀어 당시 가장 지성적인 사람으로 손꼽혔다. 다섯 개 이상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했으며 시인이었다. 그리스 철학 고전, 스토아학파의 전집을 번역하기도 했다. 늘 글을 읽고 쓰고 공부했다. 그녀가 그렇게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자기만의 산책』의 저자 케리 앤드류스는 의외의 분석을 내놓았다.
카터는 책을 읽고 글 쓰고 철학을 연구하는 고도의 지적 시간만큼 신체의 활동에도 비중을 두었다고 한다. 그 활동은 정원에서 묵묵히 식물을 심거나 잡초를 뽑는 가드닝이거나 대자연을 걷는 일이었다. 케리 앤드류스의 분석에 의하면 엘리자베스 카터의 삶은 도시에서 사회적 활동을 하며 친구를 만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뇌를 소비하는 삶과, 시골에 머물며 대자연 속을 걷고 정원 일을 하며 뇌를 충전시키는 삶 사이에 정확한 균형을 맞췄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드닝을 하고 걷고 몸을 움직이는 일과 우리의 뇌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정원 일과 걷기가 뇌의 활동을 북돋는다고 믿었다. 교실이 아니라 정원을 낀 회랑을 돌며 산책하듯 수업을 하였기에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일군의 그리스 철학자들을 소요학파라고도 한다.
걷기의 효과는 최근 과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걷거나 몸을 움직일 때 뇌세포가 생성돼 기억이나 집중력이 향상되고 창의력이 상승한다고 한다.
얼마 전 뉴질랜드 출장 중 초원이 너무 좋아 광활한 풀밭 사이를 한 시간 정도 걸었다. 그때 발바닥·다리·심장 그리고 뇌까지 전해지는 그 싱그러움은 분명 엘리자베스 카터와 그리스 철학자들이 왜 걷기를 권했는지 알게 했다. 뇌를 채우는 시간, 잠시 휴대폰에서, 모니터에서 떨어져 걸어보자!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