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보호 아닌데'…남녀 임금 격차 공시 요구에 업계 난색

2025-05-18

정치권에서 사업보고서에 남녀 성별 임금 격차를 공시하라는 법안을 발의하자 자본시장업계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자본시장법상 공시 목적인 투자자 보호와는 관련 없는 정보라는 주장이다. 정치권이 여성의 경제 참여 증가를 위한 문제 해결 대신 거꾸로 결과를 갖고 기업을 압박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임직원의 성별 임금 현황을 공시하라는 취지로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최근 반대 의견을 냈다.

신 의원은 올해 3월 자본시장법을 비롯해 남녀고용평등법·고용정책기본법·공공기관운영법·지방공기업법 개정안 등 ‘성평등 임금 공시제 5법’을 발의했다.

한국은 2022년 기준으로 성별임금격차가 31.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4%를 크게 웃돌아 격차가 큰 국가다.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 대비 여성 임금은 2019년 64.4%에서 2023년 65.3%로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기업이 남녀 임금 격차 문제를 스스로 개선하도록 직종·직급·근속연수·고용형태 성비와 성별 임금 현황 등 사업보고서에 공시 부담을 확대하자는 취지다. 현재 공시는 전체 임직원 중 남녀별 직원 수와 임금만 나타나 있다.

상장협은 성별에 따른 불합리한 차별을 하지 않고 양성 평등을 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엔 공감하지만 그 수단을 사업보고서 공시로 대외에 공표하는 것은 자본시장법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자본시장법의 목적은 투자자 보호를 통한 자본시장 효율성 제고이므로 사업보고서 공시도 재무상황·지배구조·위험요인 등 경제적 의사결정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항에 한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성별 임금 현황 등은 회사 경영 성과나 재무적 건전성과 관련한 지표가 아니라서 투자 정보로서 유용성이 낮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 입사자 출신학교 다수를 차지하는 공과대학이 남학생 위주라는 점도 기업의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공학계열의 여성 진학률은 25.8%로 낮은 수준이다. 그 결과 기업 전체 임직원 가운데 절대적인 여성 숫자 자체가 적다보니 고임금을 받는 상위 직급 여성의 수도 적다. 게다가 여성은 남성보다 육아 휴직을 사용하는 비중이 높아 근무 연한 자체가 짧기 때문에 급여가 상대적으로 낮다. 기업 의도와 관계없는 인력 구조와 사회 관행을 해결해야 할 정치권이 거꾸로 부담을 기업에 넘긴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해외에서도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하면 더 많은 나라가 증권법상 기업 공시제도가 아닌 고용평등법 등 별도 법률을 통해 성별 임금 격차를 다루고 있다.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상장기업에 성별 임금 현황을 공개하라는 법규가 없고 개별 기업이 ESG 보고서를 통해 자율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증권법을 통해 성별 임금 격차 보고를 요구하지 않고, 일본도 금융상품거래법상 공시 사항으로 편입하지 않았다.

상장협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입법 목적에 맞지 않은 공시는 법 체계 정합성에 어긋난다”며 “남녀고용평등법이나 고용노동부 고용형태 공시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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