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재 전쟁]③ 학교가 된 기업들…직접 키워 인재 절벽 막는다

2025-11-13

사내 학위·연구 과정으로 고급 AI 인재를 내부에서 양성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와 산학 협력 통해 인재 풀 확장

학제형·전주기 교육 체계로 반도체·AI 전문성 고도화

해커톤·부트캠프·해외 리쿠르팅 등 실전형 확보 전략 확산

[서울=뉴스핌] 서영욱 김신영 기자 = 인공지능(AI) 인재 전쟁이 최고조에 이르자 국내 기업들은 외부 채용만으로는 인력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직접 인재를 길러내는 체제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국가 AI 정책 사령탑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 배경훈 전 LG AI연구원장이 발탁된 데 대해 업계가 "뜻밖의 인선이 아니다"라고 평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배 장관은 LG에서 사내 학위 과정과 초거대 모델 연구 기반을 조기에 구축하며 기술·인재 내재화를 이끌어온 인물로 꼽힌다. 이 같은 흐름은 LG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해외 빅테크로의 인재 유출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국내 대기업들은 사내 대학,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 해커톤, 해외 리쿠르팅 등 각자에 맞는 방식으로 '스스로 인재를 만드는 구조'를 본격화하고 있다.

◆AI 인재 중요성에 가장 먼저 눈뜬 LG

LG AI대학원은 국내 최초로 교육부 인가를 받은 사내 대학원으로, 대기업이 직접 AI 고급 인재 양성에 나선 대표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22년 처음 문을 연 이후 AI 기초 교육부터 석·박사 과정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교육 체계를 구축하며 LG그룹의 AI 역량 강화에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지난 9월 일반 대학원과 동등한 석·박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교육부 공식 인가를 받으며 새롭게 출범했고, 내년 3월 첫 입학식을 앞두고 있다. 국내 1호 교육부 인가 사내 대학원일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드문 형태다.

LG AI대학원의 강점은 '속도'와 '밀도'에 있다. 석사는 3학기, 박사는 약 2년 내외로 설계된 초고밀도·고강도 교육 과정이며, 교수진은 LG AI연구원과 산업 도메인 전문가, 학계 교수 등 20여 명으로 구성됐다. 학생들은 AI 이론 학습은 물론, LG 계열사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난제를 해결하는 실전형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이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고급 인재를 기업이 직접 양성하는 새로운 패러다임"(교육부 평가)으로, 국내 인재 생태계 전반에도 적지 않은 파급력을 갖는다.

LG AI대학원은 LG가 지난 5년간 준비해온 'AI 기술 내재화' 전략의 핵심 축이다. 인재 확보 경쟁이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LG는 단기적 채용 전략이 아니라 필요한 인재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구조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AI 전환(AX), 공정 최적화, 예측·설계·운영 자동화 등 그룹 전반의 기술 혁신 속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반이다.

LG 내부에서도 LG AI대학원을 향한 관심은 상당하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기회가 열리면 꼭 지원하고 싶다"는 분위기다. 이승준 LG전자 생산기술원 책임연구원은 회사가 공식 석·박사 학위를 제공한다는 점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으며, "AI 분야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드문 기회"라며 "역량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LG AI연구원 관계자는 "사내 AI 대학원은 기업의 AI 경쟁력을 높이고 인재 유출을 줄이는 데 매우 효과적인 해법이 될 것"이라며 "산업 현장에서 쌓은 도메인 지식과 최신 AI 기술을 융합한 실무형 인재를 직접 길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기술 내재화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해외 우수 인재 확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사내 AI 대학원은 기업이 스스로 필요한 인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차별화된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연구 생태계로 인재 기반 강화하는 네이버

지난달 엔비디아와의 그래픽처리장치(GPU) '빅딜'에서 삼성·SK·현대차보다 많은 6만 장의 GPU를 확보한 네이버는 그동안 축적해온 AI 연구·투자 전략을 더욱 강화하며 기술 경쟁력과 인재 확보 기반을 공고히 하고 있다. 제조 대기업들이 사내 교육체계를 통해 인재를 직접 길러내는 동안, 네이버는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와 초거대 모델 역량을 기반으로 우수 연구자를 꾸준히 유치하는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네이버는 해외 AI 학회에서 연구 성과를 활발히 발표하며 글로벌 AI 연구자들과의 교류를 넓히고 있다. 매년 세계 주요 AI 학회에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수준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발표된 논문은 450편 이상, 피인용 수는 4만7000회를 넘는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글로벌 AI 커뮤니티에서의 신뢰도와 영향력을 높이고, 해외 우수 연구자를 끌어들이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산학 협력도 적극적이다. 네이버는 판교 사옥 '1784' 내에 카이스트와 공동으로 'KAIST-NAVER HyperCreative AI Center'를 설립해 초거대·창의적 AI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독일 튀빙겐대와는 '신뢰 가능한 AI', 캐나다 토론토대와는 HCI 공동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와는 소버린 AI 생태계 조성을 위한 교육·연구 협력도 진행 중이다. 연구 인력 교류와 공동 프로그램을 통해 차세대 AI 전문가 양성 기반을 한층 강화한 셈이다.

서비스 전반에 AI를 도입하고 있는 네이버는 "특정 분야가 아닌 전 영역에서 AI 인재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글로벌 연구 커뮤니티·산학 협력·스타트업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다층적 인재 확보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AI·반도체 인재를 직접 길러내는 체제 구축

AI·반도체 인재 전쟁이 거세지자 국내 주요 기업들은 더 이상 외부 채용만으로 인력을 충원하지 않는다. '필요한 사람은 우리가 직접 만든다'는 흐름이 뚜렷해지면서, 기업마다 색깔 있는 내부 양성 모델이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 정규 학위 과정을 갖춘 사내 대학부터 글로벌 R&D 네트워크 기반 석·박사급 연구자 영입, 그리고 해커톤·부트캠프·해외 리크루팅 프로그램까지, 인재 확보의 무게추가 '내재화'로 이동한 모습이다.

가장 방대한 체계를 갖춘 곳은 삼성전자다. 1989년 사내 기술대학에서 출발한 삼성전자공과대학교(SSIT)는 2001년 국내 최초 정규 대학 인가를 받은 뒤 반도체·디스플레이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길러왔다. 지금까지 1188명의 졸업생이 배출됐고, 사내기술대학원(성균관대 반도체·DMC 공학과)에서는 석사 942명, 박사 107명이 나왔다. 여기에 공정부터 설비·소프트웨어까지 11개 학부·1000여 개 과정을 갖춘 'DS유니버시티'가 더해지며, 삼성은 사실상 '직원 전체가 학생이 되는' 국내 최대 규모 기업형 교육 생태계를 구축했다.

SK하이닉스도 분위기가 비슷하다. 2017년 출범한 SKHU(SK hynix University)는 입사 초기부터 8년간 기초·전문 교육을 거쳐 졸업과 승진이 연결되는 구조로 설계됐다. 설계·소자·공정 등 17개 분야 전문강사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커리큘럼을 직접 만든다. 덕분에 교육 과정에서 배운 내용이 다시 현장으로 곧바로 적용되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수많은 구성원이 SKHU를 통해 전문성을 확보했다. 교육·현장·승진이 하나의 구조로 묶인 대표적 '학제형' 모델로 평가된다.

◆실전형·오픈형 모델로 '미래 인재' 먼저 잡는다

플랫폼·통신 기업들은 정규 학위 중심의 전통 모델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배워서 오는 인재가 아니라, 실전에서 바로 뛰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실전 프로젝트·해커톤·오픈형 채용을 결합한 '미래형 인재 확보 전략'으로 빠르게 선회하고 있다. 글로벌 리크루팅부터 자체 부트캠프까지, 이들 기업의 영입 방식은 스타트업처럼 민첩하고, 연구기관처럼 유연하다.

카카오는 사내 직원부터 외부 개발자까지 한꺼번에 움직이는 생태계형 인재 육성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사내 해커톤 '10K'에서는 전 계열사 직원들이 직접 AI 기술을 활용해 서비스를 기획·개발했고, 연례 기술 콘퍼런스 'if(kakao) 2025'에서는 새롭게 신설된 '크루데이(Crew Day)'를 통해 카카오의 한국어 특화 언어모델 '카나나(Kanana)'를 내부 구성원이 직접 실험하고 아이디어를 교류했다. 외부 인재 확보에도 속도가 붙었다. 전국 국립대와 함께 운영하는 '카카오테크 캠퍼스 아이디어톤', 550명의 수료생을 배출한 '카카오테크 부트캠프', 그리고 올해 첫 그룹 차원의 'AI 네이티브' 신입 공채까지, 카카오는 미래 세대를 끌어들이는 가장 공격적인 플랫폼 기업 중 하나가 됐다.

SK텔레콤은 '대학생을 미리 발굴해 연구 경험을 먼저 준다'는 전략을 선택했다. 2019년 1기부터 운영된 'AI 펠로우십'은 대학생이 실제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174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특히 '버추얼 트라이온(Virtual Try-On)' 연구처럼 실제 서비스에 적용된 사례가 나올 정도로 실전성이 높다. 펠로우십 수료자는 SKT 신입 전형 1차 합격 혜택을 받으며, 교육과 채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가 고착됐다.

KT는 정부와 민간의 인력 공급 루프를 연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K-디지털 트레이닝'과 연계된 '에이블스쿨'은 AI·DX 실무형 교육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고, 수료생들은 이미 500여 개 기업에 취업했다. 여기에 더해 KT는 올해 이동통신사 최초로 AI 직군만 전담하는 '테크 리쿠르팅 센터(TRC)'를 만들었다. 기술을 이해하는 '테크소서(tech-sourcer)'들이 직접 AI 인재를 찾는 구조로, 전통적 헤드헌팅과 다른 전문성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LG유플러스는 접근 방식을 글로벌로 잡았다. 지난 2023년 LA, 2024년 실리콘밸리에서 'US 페어'를 열어 현지 석·박사 인재를 대면 발굴했다. UC버클리, 조지아공대, 예일대 등 주요 연구기관 출신 인재들이 참여했고, 첫 행사에서는 아마존 출신 박대훈 연구위원을 기술 전문 임원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올해 행사에서는 네트워크를 더 넓혀 미국 현지 AI 인재 수혈 통로를 본격화했다.

syu@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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