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에서 ‘존 애덤스’라는 제목의 7부작 TV 드라마가 방영됐다. 미국 초대 부통령이자 제2대 대통령을 지낸 존 애덤스(1797∼1801년 재임)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할리우드 스타 로라 리니가 애덤스 대통령의 부인 애비게일 애덤스 여사로 분장해 멋진 연기를 펼쳐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애비게일 여사는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었으나 미국 역사상 최초의 기록 한 가지를 남겼다. 그의 아들 존 퀸시 애덤스가 훗날 미국의 제6대 대통령(1825∼1829년 재임)에 오른 것이다. 비록 애비게일 여사는 1818년 73세를 일기로 별세해 아들의 대통령 당선을 보지 못했으나, 그는 남편과 아들이 둘 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첫번째 여성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미국 제41대 대통령 조지 W H 부시(‘아버지 부시’·1989∼1993년 재임)의 부인 바버라 부시 여사는 역대 영부인들 가운데 가장 수수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일찌감치 백발이 되는 바람에 실제 나이보다 늙어 보였으나 외모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염색도 하지 않았다. 영부인으로서 그는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등 미국인의 문해력(文解力)을 높이는 운동에 앞장섰다. 남편이 대통령에서 물러나고 불과 8년 만에 바버라 여사의 아들 조지 W 부시(‘아들 부시’)가 제43대 대통령(2001∼2009년 재임)이 되었다. 이로써 바버라 여사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남편과 아들이 둘 다 대통령을 지내는 기록을 세웠다. 애비게일 여사와 달리 그는 90세 넘게 장수하며 아들이 8년간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전부 지켜봤다.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는 공개 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은둔의 영부인’으로 불린다. 그런 그가 지난 8일 모처럼 백악관에서 행사를 주최했다. 1925년 태어난 바버라 여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 우표가 발행되는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멜라니아 여사는 바버라 여사가 미국인의 문해력 증진과 여성의 사회 진출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기념 우표는 영부인으로서 바바라 부시 여사의 공헌과 우리나라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영향을 기린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아들 부시’ 부부는 함께하지 않았으나 ‘아버지 부시’의 딸 도로 부시가 가문을 대표해 백악관 행사에 참석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멜라니아 여사가 바버라 여사를 “헌신적인 어머니이자 아들 또한 대통령에 오른 단 두 명의 영부인 중 한 명”이라고 불렀다는 점이다. 남편과 아들을 모두 성공시킨 애비게일 여사 그리고 바버라 여사가 멜라니아 여사의 롤 모델인 듯하다. 마침 멜라니아 여사에겐 트럼프 대통령과의 사이에 낳은 배런 트럼프(19)라는 아들이 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백악관에 입성할 때만 해도 꼬마였는데 이제 어엿한 대학생으로 성장했다. 배런은 지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 아버지에게 젊은 유권자들 마음을 사로잡는 법에 관한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정치에도 관심이 아주 많다고 한다. 어쩌면 멜라니아 여사는 애비게일, 바버라 두 여사에 이어 남편과 아들이 둘 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세 번째 여성이 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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