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른을 기억하며

2025-04-03

10년 전에도 ‘미안합니다’ 사과

좋은 어른이란 겸손한 사람이다

헌재가 오늘 어떤 선고 낼지 궁금

홍세화 선생님이 보고픈 날이다

어떤 어른이 있었다.

나는 10년 전쯤 그에게 물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떠합니까, 하고. 대한민국이 참 시끄럽던 때였다. 언제 그렇지 않았겠냐마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인한 촛불시위가 한창이었다.

그때 그는 답했다.

“저는 누군가를 비난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잘 살아왔으면, 오늘처럼 젊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 일은 없었을 겁니다. 내가 그리고 나의 세대가 잘 살아오지 못해서 생긴 일이니 내가 사과를 해야지요. 미안합니다.” 30대였던 나와 나의 친구들은 그의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모두 자신이 옳고 상대방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할 때, 그는 젊은 우리에게 사과를 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아, 이런 사람을 어른이라고 하는 거구나. 그리고 이 사람은 좋은 어른이겠구나.

그런 그에게 작년 봄에 다시 물었다. “선생님, 좋은 어른이란 무엇입니까.”

40대가 되고부터는 좋은 무엇보다는 좋은 어른이 되고픈 마음이 사뭇 찾아왔다. 그러나 그게 뭔지는 알 수가 없고 자신이 좋은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 제대로 된 사람을 본 일이 없었다.

그는 간단히 답했다. “어렵지 않습니다. 겸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내가 아는 가장 좋은 어른이었지만, 그는 사람이란 완성될 수 없는 존재라고 늘 믿었다. 그에게 어른이란 완성에 가까워지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그는 늘 그런 삶을 살았다. 그래서 함께 공부하자고 말했고 책을 읽자고 말했다.

그를 알게 되고부터 나의 삶도 조금씩 달라져갔다. 사람이 물려줄 수 있는 것은 돈이나 명예보다도, 한생을 일구어온 태도일 것이다.

나의 아이들에게도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네가 먼저 인사해라. 고마우면 고맙습니다, 잘못했으면 죄송합니다 하고 말해라. 밥 먹기 전에 잘 먹겠습니다, 다 먹고 나면 잘 먹었습니다 인사하고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하늘에 대고라도 인사를 해라. 아빠도 그렇게 산단다. 타인의 눈치를 보고 살라는 말이 아니라 그러한 일상의 태도가 한 사람을 잘되게 만든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가장 잘될 수 있는 내가 아는 가장 정확한 태도를 물려주는 중이다.

사춘기가 온 두 초등학생은 시큰둥하게 답할 뿐이지만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욕심이겠다.

그들이 공부를 안 해 걱정이라는 아내에게도 말했다.

아이들은 우리와는 조금 다른 세상을 살아갈 거야, 착하게 살면 온 세상이 먹여 살리는 그런 세상에 살아갈 거라고 나는 믿어, 너무 걱정 말고 인사 잘하는 아이들로 키워보자.

그때 아내가 말했다. 그런 세상이 안 오면 책임질 거냐고.

나는 그런 세상이 안 올 수도 있지, 하고 멋쩍게 웃기는 했으나 다시 말했다. 애들이 착하게 살았는데 세상이 먹여 살리지 않으면 내가 몰래 먹여 살릴게.

어른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그러한 세상이 오지 않을 것이라며 세상의 욕망을 따르는, 그리고 그러한 세상이 오지 않았다고 비아냥대는 일은 아닐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그러한 태도를 실천하기 위해 애쓰고, 그러한 세상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조금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은 어른의 역할이 아닌가.

2025년 4월4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가 어떠한 판결을 내릴지 자못 궁금하다. 대한민국은 그 10여년 전만큼이나 여전히 시끄럽고, 오늘 오전은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나의 두 아이를 보며, 그리고 청소년들을 보며, 미안할 뿐이다. 정말 착하게 살아도 괜찮은 것인가.

적어도 오늘의 판결은 시대의 방향을 만들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떠하든, 나는 내가 옳다고 여기는 삶의 태도와 방향을 지키며, 나의 아이들과 내가 만날 청소년들에게 착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소소하고 보잘것없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갈 것이다.

올해 4월은 그 어른이 돌아가신 1주기이다. 그에게 다시 “선생님,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떠합니까” 하고 물으면 그는 뭐라고 답할까. 아마도 다시 사과하지 않을까. 그에게 물을 수 없음이 슬프다. 정말이지 슬프다. 내가 아는, 좋은 어른에 가장 가까이 갔던 한 어른, 홍세화 선생이 보고 싶은 날이다. 오늘의 판결을 보고 술을 한잔 따르면, 그가 앞에서 잠시 웃고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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